금산제면소, 명동 - 셰프의 이유있는 탄탄멘

탄탄멘은 원래 중국요리로 자작한 국물에 면을 비벼먹는 음식입니다. 보통 땅콩 등으로 고소한 맛을 내고 고추기름이나 갖가지 향신료를 뿌려 중식의 인상을 잡습니다. 중국식 비빔면이라고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그런 음식입니다. 한편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탄탄멘의 모습은 국물이 많은 빨간 국수인데, 이는 일본식 탄탄멘으로 중국의 탄탄멘과는 조금 다른 맛과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방문한 곳은 정창욱 셰프의 가게로 유명한 '금산제면소'입니다. 원래 저는 유명 셰프에 별 관심 없는 편인데 정창욱 셰프만큼은 면식범이나 최자로드를 통해서 팬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데이비드 장과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셰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금산제면소는 명동 부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번화한 거리와는 조금 떨어진 위치인데 조용해서 느낌있고 좋습니다. 딱히 간판이 없기에 지도 어플에 집중해야한다는 점..

 

그나마 간판 비슷한 것

탄탄멘 단일 메뉴입니다. 가격은 꽤 있는 편이지만 맛만 좋다면 이정도는 충분히 감수할만 하겠습니다. 미슐랭 빕 구르망을 받은 식당인만큼 기대치가 좀 더 높아집니다.

원래 밀가루를 소화하지 못하는 정창욱 셰프가 여행 중 우연히 탄탄멘을 먹고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아 탄탄멘으로 식당을 차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스토리를 어디선가 읽은 바가 있습니다.

 

도착했을때 정창욱 셰프는 안계셨음

가게는 1자형 테이블로 매우 소규모입니다. 한 8석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2시쯤 애매한 시간에 갔기에 조용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메뉴와 자세한 설명

 

뒷통수 쪽에 창이 달려 있어 햇볕을 쬐면서 식사할 수 있습니다. 남향인가 봅니다.

 

테이블은 높은 편.

 

탄탄멘 (12,000원)

곧 탄탄멘이 나왔습니다. 사진 찍기 좋은 고운 자태를 갖고 있습니다. 파를 흰부분 초록 부분 따로 썰어 올린 센스가 좋습니다. 뭔가 무너뜨리기에 아깝다는 기분입니다. 육수는 자작하게 깔려 있고 그 안으로 꽤 두꺼운 편인 면이 들어 있습니다. 민찌(간 고기)도 아쉽지 않은 양으로 들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우선 시각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뒤에 햇빛 때문에,..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딱 그런 모습.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겠지요.

 

일단 가차없이 비벼줍니다. 비비다 보면 자작한 육수와 기름이 면에 모두 달라 붙습니다. 소스의 점도가 눅진해서 면을 먹을 때 굳이 수저를 쓸 필요 없이 적당한 소스 양이 면에 딸려 올라옵니다. 비빔면이나 파스타를 먹을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입니다. 걸쭉한 소스로 면에 잘 달라붙는가. 물론 개취입니다.

소스는 고소함과 매콤함 그 사이의 좌표에 있습니다. 많이 매우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맵지 않습니다. 저 같은 맵찔이도 별 고통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 입니다.고소한 지방맛 사이로 씹히는 민찌의 감칠맛이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게 하고 입맛을 적당히 환기시켜주는 산초향도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산초 향은 조금더 강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더 뿌려 먹을 수 있게 테이블에 준비되어있는데 계속 '한 젓가락만 더 먹고 넣어야지'하며 어물쩡거리다가 결국 끝까지 안넣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탄탄멘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요소는 바로 면입니다. 아마 가게 이름이 제면소인 만큼 면도 자가제면을 하시는 듯 하는데, 이 면이 참 좋습니다. 굵기도 두툼해서 비빔면에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질감이 매력적입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식감과 익힘의 정도입니다. 올해 먹은 수많은 면 중에 가장 제 취향에 맞는 면이라고도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흑식초

마제소바도 중간쯤 먹으면 다시마식초를 뿌려 신맛 위주로 맛을 다시 재정립합니다. 먹다보면 감칠맛과 지방맛에 입이 피로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논리로 '금산제면소'도 어느 정도 탄탄멘을 먹은 후에는 흑식초를 뿌릴 것을 권장합니다. 그래서 뿌려먹었습니다. 흑식초 자체가 생각보다 신맛이 강하게 도드라지지 않아 면에 잘 어울립니다. 신맛 중심으로 맛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전체 그림의 밸런스가 다소 무너질 수 있는데 이 흑식초는 그 자체로 맛에 매력이 있어 너무 지나치치만 않다면 충분히 좋은 선택일 듯 합니다.

 

온천 달걀 (1,000원)

추가 메뉴로 온천달걀을 주문했습니다. 탄탄멘에 비벼먹을 예정입니다.

 

넣어주고 스까주었습니다. 달걀 덕분에 매콤함과 고소함 사이에 있던 탄탄멘 맛의 좌표가 고소함쪽으로 확 옮겨졌습니다. 노른자의 풍부한 맛이 탄탄멘의 소스를 모두 잡아먹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느끼한 것을 좋아하기에 달걀 넣은 탄탄멘도 매력적이었으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탄탄멘 소스맛을 놓치지 않으며 달걀 맛을 굳이 즐기고자한다면 고추기름과 흑식초를 다시 추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튀긴 양파와 흰쌀밥 (1,000원)

마지막으로 밥까지 넣어 깔끔하게 섞어 먹었습니다. 밥 비빈 사진은 다소 개밥같아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냥 까먹음) 하지만 맛 자체는 상당히 훌륭했다는 점. 풍부하고 눅진한 맛에 산초가루에서 오는 향을 더한 밥이었습니다. 게다가 튀긴 양파의 바삭한 식감은 먹는 재미를 더해줬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 쯤에는 정창욱 셰프가 출근했습니다. 일하시는 중이니 따로 사진을 찍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팬으로서 얼굴이라도 구경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일단 음식이 맛있었으니 더 기분 좋은 조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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