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김훈/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년, 권여선 외
- 익명의 시선/제가 이런 걸 읽었는데요
- 2020. 8. 10. 13:33
연필로 쓰기, 김훈
김훈 작가의 산문집. 원래 그의 문장을 좋아해서 필사도 여러 번 한 적 있다. 산문집 전작인 ‘라면을 끓이며’도 인상 깊게 읽었기에 고민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주문했다. 천 원쯤 더 내고 사은품으로 마디가 굵은 연필도 한 자루 받았는데 여태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다. 방금 호기심에 연필의 행방을 찾았으나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쓸모 없는 사은품에 괜히 욕심을 냈다.
김훈 작가의 문장은 짧고 힘이 있어서 좋다. 한때 그의 문장에 빠져서 어설프게 흉내를 낸다고 내 문장이 짧아지기도 했다. 그때 쓴 글들은 쉽게 읽힌다며 칭찬받기도 했는데, 어째 내 맘에 들지가 않아서 이제는 흉내내지 않는다. 지금 와서 다시 책 속 그의 문장을 살펴보니 그리 짧지도 않다.
건조한 문체 속에 따뜻한 통찰이 들어있다. 생각해보면 그리 건조할 것도 없다. 읽은 시간이 꽤 되어 자세한 감상을 적지는 못하지만 ‘호수공원의 산신령’, ‘이등중사 박재권의 뚫린 수통’, ‘냉면을 먹으며’가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도 ‘호수공원의 산신령’이 특히 좋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년, 권여선 외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점에 들어갈 때만해도 문학상 작품집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책장을 거닐다 갑자기 소설이 읽고 싶어졌던걸까. 하여튼 덕분에 문학상 작품집이란 장르에 흥미가 생겼다.
문학상 작품집은 한 해의 훌륭한 중단편 소설로만 이루어진다. 유수의 심사위원들이 엄중하게 고른 리스트이니 그 어떤 소설집보다 믿고 읽을 만하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그렇다.
9편의 소설이 들어있다. 좋았던 것도 있고 차마 다 읽지 못한 것도 있다. 특히 좋았던 것을 꼽자면 대상을 수상한 권여선 작가의 자선작 ‘전갱이의 맛’, 최옥정 작가의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최은영 작가의 ‘아치디에서’, 이렇게 세 편이다.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는 최옥정 작가가 암투병 간에 집필했다. 시한부 환자의 심리 묘사가 특히 탁월하다. 마지막 문단 아래의 주석을 읽고서야 그가 이 작품을 유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지막 문장의 여운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