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수는 못 했으니 욕 먹어도 싼가
- 익명의 시선/익명의 시선
- 2018. 7. 2. 19:45
이번 월드컵에서 장현수의 경기력은 우리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우리 옆집 사는 동네 꼬마 철수도 아는 사실이다. 초보적인 실수로 PK를 헌납하고 알 수 없는 타이밍의 태클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미숙한 볼 터치와 패스 미스로 대표팀을 여러 번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의 입장에서도 아쉬울 만 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장현수의 경기력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또 있었다. 바로 도 넘은 네티즌들의 비난이다. 매 월드컵마다 아무리 삼천만 신문선 차범근 시대가 도래한다지만, 그들의 비난은 축구 내적인 부분의 비판을 넘어 선수 개개인 인격 차원에까지 도달했다.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는 마치 축구 대표팀의 패배로 그들에게 ‘장현수 욕하기 일주일 이용권’이라도 부여 받은 것처럼 보인다. 못한 선수들은 욕먹어도 싸다는 그들의 믿음에 따라 죄책감은 저리 치워버린 채 선수들을 누가 더 교묘하게 비꼬고 비난하는가 경쟁하는데 열을 올리는 모습을 우리는 네이버와 다음 포털 댓글란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대표팀 욕하기 놀이에 심취해있는 네티즌들에게는 안타까운 소리겠지만 우리에게는 축구 대표팀을 욕할 권리가 없다. 그들은 천만리 바깥에서 TV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우리가 마치 선수들을 심판할 천부적인 권리를 갖고 있는 양 행동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런 갑질을 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그저 자신들의 능력을 다해 공을 찰 뿐이고, 그 경기 결과는 오롯이 그들 스스로의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종종 태극마크에 지나친 사명감을 부여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선수들이기에 경기에서 죽기살기로 부응해야 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자니 무언가 이상하다. 국가 대표팀이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자기가 좋아하는 팀에 관심이 가고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찌 이상하겠는가.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그 다음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표 선수들은 한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기 때문에 대표 선수로 뽑혔다. 그래서 4년마다 저 멀리 타향에 나가 다른 나라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는 선수들과 실력을 경쟁한다. 우리는 국가 대표팀의 열렬한 서포터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딱 여기까지다. 경기의 승패와 성과는 팬들의 손을 떠났다. 이기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만, 지더라도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상대에 비해 모자랐을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만약 축구를 못하는 것이 죄라면, 월드컵 마다 국내에 남아있는 4500만 국민은 들어갈 구치소를 알아봐야 할 테다.
축구장 위에서의 승리는 축구장 위에서 멈춘다. 한국 대표팀이 독일 대표팀을 이겼다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독일보다 높아지지는 않는다. 한국 대표팀의 패배는 일개 축구팀의 패배다. 대한민국이 진 것이 아니라 축구팀이 졌다. 오묘한 애국심을 축구 대표팀에게까지 확장해 그들을 역적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단지 공을 정확하게 차지 못해서, 상대보다 더 높이 뛰지 못해서 패배했다. 각자 안방에서 편안하게 TV를 지켜보던 우리는 탄식이나 몇 번 했을 뿐 딱히 피해 입은 것도 없다. 우리의 탄식보다는 그라운드 위 선수들의 탄식이 몇 곱절은 더 깊었을 것이다.
패배한 대표팀에 성장을 위한 건설적인 비판이나 격려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인격을 향한 도 넘은 비난은 멈춰야 한다. 선수들은 축구를 잘하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해서 뛸 뿐 우리에게 승리의 영광을 선사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 국가 대표팀의 패배가 곧 대한민국의 패배이지도 않다. 선수들이 패배했다고 네티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되려 진짜 대한민국의 패배는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달걀을 던지는 일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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