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파업과 공유 경제, 그리고 19세기 영국



LA에서 택시는 멸종됐다택시가 사라진 도로는 우버가 대신 점령했다. 차가 없으면 돌아다니기 불편한 이곳에서 택시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택시보다 싸고 편리한 우버의 득세 덕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를 타면 위험하게 길바닥에서 차를 불러 세울 필요도 없고 승차 거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가격이 더 싼 경우가 대다수이니 굳이 택시를 탈 이유가 없다우버가 출시 된지 십 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LA에서 택시라는 단어는 벌써 사장되어 고어가 돼버렸다미국에서 택시는 조만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모양이다.

 

한편 우버가 법적 규제에 막혀 한참 전에 철수했던 한국에서도 차량 공유 서비스를 가지고 택시 논쟁이 한창이다결국 쟁점은 택시 기사들의 권리 보장으로 귀결되는 듯하다택시 면허 없는 개인이 카카오 카풀을 비롯한 차량 공유 서비스의 운전자로 나서게 되면, 택시 기사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면허를 받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치렀거나 택시 회사에 사납금을 내던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만도 한 일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차량 공유를 부르고 있다불과 8~9년 만에 어마어마하게 커져버린 우버의 덩치가 이를 방증한다기술의 발전은 공유 경제라는 개념을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다길바닥에서 택시를 잡던 수고를 이제는 스마트폰이 대신 해주게 된 것이다이런 환경 속에서 택시와 택시 면허는 과거의 유물로 뒤처질 수 밖에 없다마치 자동차의 등장이 마차를 박물관으로 보내버렸듯이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 택시 기사들의 파업은 과거 영국의 적기조례를 떠올리게 한다. 19세기 말 영국자동차가 상용화되기 시작하자 실업을 우려한 마부들의 로비로 자동차의 속도를 마차 수준으로 제한하는 붉은 깃발 법다른 말로 적기조례가 영국에서 시행된다길거리에 말보다는 자동차가 당연해진 지금의 관점에서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이 법은 영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을 방해했다그 결과, 영국은 다른 국가보다 먼저 자동차를 상용화했음에도 정작 자동차 산업의 기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주변국에게 뺏기게 되었다자연스러운 일이었다맘껏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없는데 누가 자동차 성능 개량에 관심을 가졌으랴. 19세기 말 선두를 빼앗긴 영국은 지금까지 자동차 산업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마부들의 실업을 막기 위한 착한 법이 영국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장님으로 만든 셈이다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죄였다.

 

지금의 한국의 상황은 백 여 년 전 영국을 닮아 있다택시 업계의 입장은 딱하지만시대의 흐름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지금 카카오 카풀이라는 파도를 잠시 막아냈지만 공유 경제라는 거대한 조류를 타고 끊임없이 다음 파도가 몰아친다아무리 굳센 결심으로 모랫바닥에 뿌리를 디디고 서있을지언정 끝없는 파도에 언젠가는 떠내려 갈 수 밖에 없다잠시 동안은 버틸 수도 있겠다그러나 그 잠시 동안 우리는 공유 경제라는 꿀통을 제대로 파먹어보지도 못하고 묻어둔 채 점점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택시의 파업에 승객들과 정부 그리고 기사들까지도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이제자동차의 득세를 막아보려 법까지 동원했음에도 말들이 도로에서 쓸려 내려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영국의 교훈을 떠올려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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