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야말로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더 라이트하우스>를 보고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더 라이트하우스>를 봤다.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몇 자 남긴다. 

 

<더 라이트하우스>는 등대에 고립된 두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선임 등대지기 토마스(윌리엄 데포)와 조수 에프레임(로버트 패틴슨)은 섬에서의 고립이 계속되자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힌다. (딱히 스포일러랄 것도 없지만 나머지 내용은 직접 보는 재미를 위해 남겨둡니다.)

 

장르는 공포다. 딱히 무서운 장면은 없다. 사건이 많은 영화도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무섭다. 두 인물이 충돌하고 그 틈새에 미스테리한 현상들이 스며들면서 관객들의 심장을 죈다. 

 

영화는 불친절하다. 얼마 없는 사건마저 인과를 제대로 밝혀 설명하지 않는다. 주어진 단서는 극히 적고 상징은 난해하다. 마지막 시퀀스가 끝날 때까지 주제 의식 조차 명확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편히 즐기는 팝콘 무비는 절대 아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해석을 찾는다. 화면상에 등장했던 단서와 상징을 조합해 퀴즈의 정답을 맞추려고 한다. 특히 프로메테우스, 이카루스, 세이렌 등 그리스 신화적 요소가 다수 차용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힌트로 여긴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해석이다. <더 라이트하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를 차용했지만 그 이미지들은 그 이상의 메타포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단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에프레임이 프로메테우스처럼 산 채로 간을 쪼아 먹힌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와 에프레임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에프레임은 극 내내 개인의 욕망을 위해 등대 빛을 열망하는 존재다. 불을 나눠주는 숭고한 선지자와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해석하면 난해하다. 정답이 없는 퀴즈를 푸는 듯하다. 우리는 이 영화처럼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영화를 종종 만나곤 한다. 이해할 수 없으니 혹평이 절로 나온다.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찍은 거야? 우연히 감독에 발탁된 어느 운 좋은 놈팽이가 수백만달러의 제작비로 생각도 없이 찍고 싶은거 대강 찍은거 아니야?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테넷>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영화 대사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려하지 말고 느껴라”

 

‘더 라이트하우스’는 애당초에 스토리의 인과를 짜맞추고 상징을 해석하며 쾌감을 얻는 영화가 아니다. 감독도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거나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대신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때 영화의 진가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넷>은 오히려 논리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지적퍼즐을 풀며 쾌감을 주는 종류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정답을 정해놓았다. 장면 속에 어지러히 뿌려진 힌트를 통해 스토리의 인과를 짜맞추고 반전을 이해하며 즐기는 한 편의 퀴즈쇼같은 영화다. 한편, 상징해석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로는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마더!>가 떠오른다)

 

등대섬에 고립된 두 인물의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이윽고 광기가 두 사람을 사로잡는다. 뒤엉킨 죄책감과 욕망은 광기를 불태우는 강력한 화석연료다. 영화는 두 사람을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 인간의 밑바닥을 두들길때 폭발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공포스럽고 서글프다.

 

그 과정을 감독은 흑백 컬러와 좁은 화면비로 알뜰살뜰하게 담아낸다. 배우의 훌륭한 연기 역시 몰입을 돕는다. 화면에 가득차는 윌리엄 데포의 얼굴은 악몽에서 만나게 될 것만 같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영화적 압박감이 대단하다. 숨죽여 스크린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각 장면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를 상징과 의미를 찾느라 머리 굴릴 필요는 전혀 없다. 이런 영화에는 압도되면 된다.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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