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골, 신길동 - 나의 돼지갈비 기준점

저는 맛있는 돼지갈비에 대한 기준이 높습니다. 왜냐면 어릴 때부터 먹으며 학습한 돼지갈비의 수준이 '순흥골'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게 아니라, 제 입맛이 순흥골에 이미 맞춰져서 다른 집의 돼지갈비를 어색하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적 부터 가족 외식으로 항상 가던 단골 식당 '순흥골'을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다시 방문했습니다.

 

 

 

6시만 넘어도 순흥골 앞에는 웨이팅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날은 점심을 거르고 5시에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이 정도 열정은 있어야 웨이팅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도 여기가 본점인데, 신정역에도 본점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 진짜 본점인지는 알 수 없겠습니다. 순흥골 지점 사장님들 사이에 원조 논쟁이 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어찌됐든 신길동의 순흥골이 2000년대 초반부터 저희 가족이 꾸준히 다녀온 맛집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저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메뉴판을 찍기 위한 극도의 줌인

 

아직 저녁시간이 시작되기 전인 5시에도 이미 가게 내부에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테이블 사이로는 계속 서버들이 돌아다니고 약간은 정신이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메뉴판을 깔끔하게 찍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스테이크형 돼지갈비 (3인분, 42,000원)

 

1인분에 14,000원 하는 돼지갈비를 일단 3인분 시켰습니다. 어차피 한 숯불에 구울 수 있는 최대량이 3인분이기 때문에 4명이서 와도 일단 3인분부터 시키는 것이 현명합니다. 순흥골 만의 비법 소스에 버무린 돼지갈비들이 숯불 위로 올라옵니다. 고기를 굽기 전에는 숯불 아저씨가 와서 숯을 놔주시는데 이때는 조금 긴장을 해야합니다. 저번에 누군가가 숯에 팔이 데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흥골은 고기도 훌륭하지만 밑반찬이 상당히 괜찮습니다. 감자사라다, 연두부, 동치미에 양념게장까지 종류도 다양한데다 심지어 맛까지 좋습니다. 어린 시절 이 곳으로 한국의 외식문화를 입문했기 때문에 식당들 밑반찬 수준이 다 이 정도는 되는 줄 알고 자라왔습니다. 알고보니 여기가 특출난 편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양념게장이 인기가 많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때 이후로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초등학생 쯤 됐을때 갑각류 알러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러지가 생기기전 게장을 먹은 기억이 있어 게장이 맛있다는 사실은 아는데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으니 괴롭기만 합니다.

 

 

 

'순흥골'에서 밑반찬을 많이 주는 이유는 어쩌면 고기 굽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돼지갈비 굽기 전문가 아조시 아주머니들이 와서 고기를 꾸준하게 돌봐주시는데, 도무지 먹으라는 싸인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배고파도 군말없이 꾹 참고 있어야하기에 밑반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먹어가면서 버텨야 그나마 버틸만하기 때문입니다.

 

 

공기밥 (1,000원)

 

오늘의 밥은 흑미입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 날 밥은 조금 질게 된 편이라서 안타깝습니다.

 

 

 

4명이서 3인분은 너무 적습니다. 가격이 만만한 편은 아니지만, 어차피 가족끼리 가끔씩 나오는 외식이기에 아낌없이 다시 3인분을 추가 주문합니다. 너무 정신 없이 먹느라 제대로 사진 조차 찍지를 못했습니다. 고기 맛에 대한 이야기도 하나도 못했네요.

 

 

 

다시 시간이 흘러 3인분이 다 구워졌습니다. 사진 상으로는 한 장만에 다 구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걸렸다는 것. 어쨌든, 고기가 다 구워지면 직원분이 양념이 눌러붙은 판을 새로 갈아주시고 고기가 더이상 타지 않도록 고기들을 가장자리로 보내줍니다. 즉 먹어도 된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순흥골 고기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두께에 있습니다. 아주 두툼하게 썰어낸 돼지갈비를 숯불 위에서 휘휘 저어가며 굽습니다. 저 같은 뜨내기가 굽다가는 다 태워먹을 수도 있으니 굽기 전문가인 직원분이 직접 구워주는 것입니다. 갓 구워진 고기는 그리 질기지 않고 부드럽고 폭신폭신하게 씹힙니다. 육즙이 살아있는 와중에 어렵지 않게 씹히는 갈비 살과 기름의 고소한맛은, 바깥에 발라진 양념맛과 섞여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보통 양념 갈비는 금새 질리곤 합니다. 달달함으로 맛의 중심을 잡기 때문입니다. '순흥골'의 돼지갈비는 분명 단 맛을 중심으로 삼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갈비와 다르게 빠르게 물리지 않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두꺼운 고기의 두께와 거기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육즙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양념의 단맛이 다른 집처럼 지나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요. 참고로 고기를 빨리 먹지 않으면 숯불의 잔열로 푹 익어버리는데 그때는 고기가 질겨져서 두툼한 두께가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구워지자마자 전투적으로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 냉면 (1,000원)

 

예전에는 냉면도 서비스로 주셨는데, 언젠가부터는 천원을 받습니다. 그래도 천원이면 거저니까 몇 그릇 주문합니다. 

 

 

 

냉면 자체가 먹고 싶었다기 보다는 이렇게 냉면 면발에 고기를 싸먹으며 냉온의 온도 대비를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순흥골'의 냉면은 동치미 베이스로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일반적인 고깃집 냉면에 비교한다면요.

 

 

 

아 이 된장찌개도 상당히 좋습니다. 밥을 시키면 서비스로 따라나옵니다. 입에 고기와 밥을 잔뜩 우겨넣고 씹다가 된장찌개를 한 스푼 딱 때려 넣으면..크으...아시죠...맛...

 

 

스테이크형 돼지갈비 (1인분, 14,000원)

 

혹시 1인분 양을 궁금해하실분도 있을 것 같아 따로 1인분을 주문해보았습니다. 블로그에 대한 열정이 14,000원보다 강렬한 것입니다. 물론 아직 먹어야할 냉면과 공기밥이 좀 남았던 이유도 있긴 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순흥골'은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식사시간에 도착하면 무조건 웨이팅이 걸리지만 그래도, 제가 아는 최고의 돼지갈비 집 중 하나로, 충분히 한번쯤 방문해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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