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수산/전라도회양념, 노량진수산시장 - 겨울 방어 아이러니

겨울은 방어에게 슬픈 계절입니다. 날이 쌀쌀해지면 방어 가족은 집집마다 줄초상을 치러야 합니다. 겨울이 되면 추운 바다를 견디기 위해 방어는 살을 단단하게 하고 지방질을 늘리기 때문입니다. 바닷물이 차가워 얼어 죽지 않으려고 방어는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세운 것인데, 인간이라는 변수가 바다와 방어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인간 때문에 방어의 생존 전략은 오히려 죽음을 부르는 아이러니가 되었습니다. 

방어 입장에서는 비극이지만 인간 입장에서는 희극입니다. 왜냐면 겨울 방어는 살이 단단하고 기름진 별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방어가 아닌 인간이기에 굳이 그 아이러니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포식자가 되고 나면 아랫 단계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그냥 겨울이 되면 방어를 먹으러 갈뿐..

 

그래서 저도 방어를 먹으러 노량진수산시장에 왔습니다. 고래인지 꼬부기인지 뭔지 모르겠는 캐릭터가 윙크를 하며 우리를 반겨줍니다. 본인도 인간 앞에서는 하등 횟감에 불과하단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정장까지 차려입고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알록달록 전구입니다. 노량진수산시장 재건축하고 나서는 처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회는 천호수산에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가 이미 이곳에 예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횟집에 예약을 하면 회뿐만 아니라 초장집까지 모두 준비를 해줍니다. 예약안하고 오면 회도 기다려서 떠야하고, 그 회를 갖고 초장집 앞에서도 한참을 대기해야합니다. 요새는 방어 시즌이라 특히나 수산시장에 사람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징그럽기도 한 것 같은데 보다보니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

전날 먹은 술이 덜깨서 헤롱헤롱한채로 물고기들을 바라봅니다. 예약을 담당한 친구가 회 주문도 담당하고 있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우리 회인줄 알았는데 다른 손님들 회 였습니다. 벌써 회가 나오기엔 우리는 아직 주문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것이 아닌 회를 지켜보며 입맛을 다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횟집, 천호수산에서 예약해준 초장집 전라도회양념 입니다. 예약해놓고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된대서 선발대가 미리 올라가 있기로 했습니다. 후발대는 회가 나오는대로 들고 오기로 했습니다. 회 떠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숙취가 너무 심해서 그냥 저도 선발대에 합류했습니다.

 

저희는 인원이 9명이라 룸으로 안내받았는데, 룸에는 메뉴판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었던 것이, 예약을 담당한 친구가 초장집 매운탕 주문은 물론 총무까지 모조리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인품이 상당한 친구입니다.

 

모듬 회 (80,000원)

회가 나왔습니다. 방어와 흰살 생선 회를 섞어서 주문했습니다. 방어만 먹으면 느끼해서 질릴 수도 있겠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과론 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냥 방어만 시켰어도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흰살 생선은 방어를 안먹으러 왔을 때도 먹을 수 있지만, 방어는 방어를 안먹으러 온 날에 곁다리로 먹기에는 조금 비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같은 구성으로 두 접시를 주문했습니다. 

 

노량진수산시장에 와서 항상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눈탱이를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를 잘 모르기 때문에 횟집 사장님이 말해주는 가격을 진짜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혹시라도 사장님이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속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조각조각 썰려버린 생선에게 "너는 얼마짜리니?"하고 그 스스로의 가치를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셈이고, 그냥 대충 먹기로 했습니다. 괜히 의심하는 마음을 가져봤자 증명할 수도 없고 스스로 피곤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뭐가 어찌됐든 방어는 맛있었기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한때 이 살덩이의 주인이었던 방어는 우리가 그 살덩이를 맛있다고 감탄하는 모습에 기뻐했을까요 슬퍼했을까요. 이미 생선 헤븐으로 가버린 방어이기 때문에 그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제 먹은 술로 인한 숙취에 오늘도 술을 마셨으니 숙취가 누적되어 복리로 쌓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운탕으로 즉석 해장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국물만 먹으려고 했는데 오늘 예약과 주문과 총무를 담당한 친구가 건더기까지 함께 떠주었습니다. 참으로 인품이 좋은 친구입니다. 이 건더기도 방어인지 아닌지 조각조각 하얗게 익어버린 살덩어리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상당히 맛있었습니다. 부들부들 녹아내리는 살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방어도 꼭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서 방어 맛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기를 통해 가장 운 없는 친구를 골라 튀김을 사오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날 운이 있는 편에 속했고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튀김을 받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노량진 수산 시장 2층에는 초장집 주변으로 튀김집들도 많이 있습니다. 안 먹고 그냥 집에 갔으면 억울할 뻔 한 맛이었습니다. 갓튀겨서 빠삭빠삭 맛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새끼 게들을 통째로 튀긴것이 맛있었습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방어와 기타 해산물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생선들도 생선헤븐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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