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연어, 서울대입구역 - 이 연어가 보편적이길 바라며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2. 23. 08:38
'보편적'이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두루 널리 적용되는' 의미를 뜻한다고 사전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편적 연어'라는 식당 이름은 어떤 생각으로 지어진 이름일까요. 보통의 경우라면 자신의 연어가 그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광고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식당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리송한 네이밍 센스다 싶었지만, 음식을 먹어보니 사장님의 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입구 역 주변, 샤로수길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게 내부는 좁은 편이고 테이블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남자 사장님이 요리를 담당하시고 여자 사장님은 서빙을 담당하시는 듯 합니다.
메뉴판이 상당히 두껍습니다. 그렇다고 메뉴가 많은 것은 아니고, 이런저런 읽을 거리들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메뉴는 가게 간판과 같이 연어 메뉴 일부와 돈까스를 비롯한 각종 튀김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외에도 카레나 멕시코 스타일 칠리 소스들이 사이드로 준비되어있습니다. 메뉴의 일관성은 그다지 없는 편.
이 식당에 큰 호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메뉴판에 첨부되어 있는 읽을 거리 때문입니다. 사장님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글부터 해서, 식당에서 직접 개최한 듯한 수기전 수상작들까지.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글을 읽으며 이 식당 작명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게 이름에 '보편적'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 없는 한국 식당이 내는 음식의 품질을 생각해봅시다. 과연 그 음식들을 보편적인 한국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보편적 식당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사장님의 철학이 엿보입니다.
그 철학에 맞게 음식들의 수준이 공통적으로 높습니다. 일관성 없는 메뉴 구성이지만 완성도는 일관되어 있습니다.
연어는 탱글한 맛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흔히 접하던 퍼석한 연어와 다릅니다. 되려 쫄깃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씹을수록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감칠맛이 매력 있습니다. 그 밑에 깔려 있는 밥 역시 밥알들이 살아 있어 씹히는 식감이 좋습니다. 식당 온장고에서 몇 시간을 있었는지도 모를 스텐레스 밥공기만 만나다 이런 밥을 만나니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누히 하는 이야기지만 밥이 맛있으면 반찬이 뭐든 그 식사는 즐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한식의 반찬 문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밥입니다. 밥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다채로운 반찬을 준비하는 것인데, 몇몇 식당들은 반찬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밥은 대량으로 지어 온장고에 처박아 놓는 듯 합니다. 꼭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밥에 깊은 공을 들이는 식당들이 그리 흔치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편적 연어'의 쌀밥은 보편적이라기 보단 특별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의 밥이 한국 식당들의 보편의 기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장님의 생각 역시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감히 추측합니다.
보편적 연어라는 식당을 알게 된 계기는 바로 돈까스. 돈까스가 괜찮다는 소문에 블로그를 뒤적이다, 식당의 철학을 알게 되고 호기심에 이렇게 직접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주문한 것은 일종의 모듬튀김. 닭고기 튀김과 돼지고기 튀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치킨과 돈까스인 셈.
좌측이 돼지고 우측이 닭이겠지요. 두툼하게 튀겨져 나온 튀김은 상당히 훌륭합니다. 돈까스 전문점에 기대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연어집에서 만나게 되네요. 튀김옷도 바삭하고, 고기가 두껍기 때문에 씹는 재미가 있습니다. 모듬 튀김에는 밥이 딸려나오지 않습니다. 따로 주문하려했는데,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하는 듯한 사장님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냥 튀김만 먹었습니다. 사실 그래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거든요.
멕시칸 스타일 칠리소스도 함께 나옵니다. 사워소스와 체다치즈가 들어간 고기 소스인데, 정통 멕시칸이라기보단 타코벨 스타일에 좀더 비슷한 듯합니다. 워낙 이런 스타일 음식을 좋아하기에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살짝 매콤한 맛이 가미되어 있어 포크로 푹푹 퍼먹기에 좋았습니다.
고기와 분리되는 튀김옷은 조금 아쉬운 느낌입니다. 숙취가 있었는데 기름으로 깔끔하게 해장했습니다.
돈까스와 함께 먹기에는 커리가 참 괜찮았습니다. 농도가 눅진해서 튀김을 찍으면 숟가락으로 뜬 것 마냥 커리가 쭉 딸려옵니다.
아쉽게도 보편적 연어는 12월 중으로 휴업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내년은 되어야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괜찮은 식당을 발견한 것 같은데, 보자마자 이별이라니 아쉽습니다.
사장님의 철학이 느껴지는 한 끼였습니다. 이런 철학을 가진 사장님들이 많아져야 식당들의 보편적 수준이 올라갈 수 있겠지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먹은 한 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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