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센트 자리를 찾는 일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 간만에 카페로 마실을 나갔다. 따듯한 커피를 한잔 시켜두고,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책도 읽고 오랜만에 벼르던 글이나 몇 자 적으려는 요량이었다. 전에 점 찍어두었던 근처 대학교 옆 큰 카페로 향했다.

 

비가 오던 날이었음에도 카페 안은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어쩌면 비를 피하려 몰려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노쇠하여 충전 없이는 한 시간을 채 못 버티는 노트북을 위해 콘센트를 쓸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카페를 빙빙 돌았다. 콘센트 자리는 이미 누군가의 차지였다.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일단 아무 자리나 잡고 콘센트 주변 자리를 주시하기로 했다.

 

책을 펴들고 읽는 둥 마는 둥하며 그 요주의 자리들을 감시했다. 미국의 카페는 한국보다 콘센트 자리가 적었다. 그럼에도 콘센트를 노리는 조용한 적들의 숫자는 비슷했다. 다시 말해 경쟁이 훨씬 치열했다는 뜻이다. 콘센트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 짐을 챙겨 일어설라치면 어느새 옆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한 뒤였다.

 

전기의 왕좌를 향한 나의 열망은 점점 더 강해졌고, 그 왕좌를 향하는 경쟁자들의 시선도 더더욱 거세졌다. 결국 나는 펴 놓은 책을 읽기보다는 콘센트를 감시하느라 더 많은 정력을 쏟고 있었다. 미어캣처럼 안절부절하며 주변을 살피는 사이 내가 계획한 여유로운 커피 한잔과 독서의 평화는 깨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씨름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굳이 콘센트에 연연해야 하고 있는 거지. 글을 쓰고 싶으면 그저 노트에 적으면 그만이다. 그도 아니면 스마트폰이라는 훌륭한 문명의 이기가 내 손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카페까지 와서 콘센트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까운 커피만 식히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에 대한 묘한 강박이 나의 오후를 망쳐버리고 말았다. 때로는 놓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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