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 무엇을 원하는가

아직 아무도 마시지 않은 깨끗한 새벽 공기 속으로 담배 연기를 섞는다. 어둑한 아파트 단지 풍경 속으로 뿌옇게 연기 구름이 스며든다. 밤 날씨는 서늘하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 쬐어 눈을 찌푸려야 했던 낮이 무색할 정도다. 스산한 공기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를 굽어 내려보던 높은 아파트 불은 모두 꺼졌다. 나는 오롯이 혼자서 건물 사이 사이를 천천히 누빈다.

 

떠나는 자, 그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이어폰에서 흐르는 노래 가사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밤 날씨만큼 서늘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대답하기에는 영 어눌하다. 처음 떠나보는 것도 아닌데 이번도 머리가 아프다.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흐른다.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은 그 날은 점점 내게 다가온다.

 

별 다른 계획은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흐를 뿐이다. 그게 내 좌우명이지 않는가. 다만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나는 속이 조금 답답하다. 밤 하늘이 깜깜하다. 별 몇 개가 반짝이지만 이정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위해 떠남을 선택했는가. 나의 선택이지만 대답은 나의 몫이 아닌 것 같다. 마치 남이 등을 떠밀어 억지로 떠나가는 것인 듯이.

 

남들에게는 그럴 듯한 계획을 늘어놓았다. 남들에게까지 생각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은 이유였다. 진짜 고민은 그냥 마음 속에 묻는다. 더더욱 답답하다. 답답함은 곧 조급함으로 바뀐다. 날이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조급함은 곧 화로 이어진다. 소리라도 지르기에 아파트 단지는 너무 조용하다. 대신 발걸음을 그저 멈추지 않기로 한다.

 

떠나는 자에게는 이별이 남는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아닌데 괜히 아쉬움이 남는다. 남아있는 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내게 가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게 다가오는 감정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정은 한 번 주면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허나 되돌려 받지 않을 요량으로 주었어도 막상 놓고 떠나려니 은근한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 아파트 단지의 모습도 마찬가질 테다. 아파트들은 언제까지고 여기 서있을 테지만 나는 떠난다.

 

서늘한 밤공기가 점점 차가워진다. 공기의 온도는 아까와 그대로일 것이다. 변한 것은 그 동안 걸어 다닌 내 피부의 예민함이다.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공기는 어떻게 느껴질지 문득 궁금해진다. 공기는 지금과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내가 어떨지 지금으로선 감히 알 수 없다. 차가워진 밤공기 속에서 나는 집으로 돌아갈 지 고민한다. 아직 고민할 거리가 더 남았는데 새로운 고민은 내게 돌아가기를 종용한다.

 

내일은 또 할 일이 있다. 떠나는 자도 내일을 살아내야 한다. 떠나는 자라고 내일이 사정을 봐주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똑같이 흐른다. 떠나는 것은 나뿐이다. 쓸데 없는 생각은 쓸데없다.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우선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아파트 현관 앞에서 아까처럼 여전한 새벽 공기 속에 담배 연기를 섞는다. 다만 내 사색이 스며든 새벽 공기는 더 이상 깨끗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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