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 간행물/먹고나서 생각하기 김야매 2020. 10. 27. 15:09
미국에 잠시 살던 때 일이다. 시내로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열차가 잠시 정차한 틈에 한 흑인 남성이 한인타운 곱창집을 검색하던 내 스마트폰을 낚아채 달아나버렸다. 역 부터 0.5마일 남짓 쫓아갔으나 그가 달아난 곳은 동양인에 비우호적인 동네였다. 깊숙히 들어갈 수 없어 추격을 포기했다. 동네 주민들은 나보다 도둑의 편이었다. 우연히 추격전을 목격한 한 백인 가족이 경찰 신고를 도와주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결국 핸드폰 없이 동네로 돌아가야 했다. 도착하니 해가 늦게 지는 LA임에도 어수룩했다. 그때 허탈한 마음으로 찾았던 식당이 바로 판다 익스프레스다. 판다 익스프레스는 미국식 중식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다. 만만한 식당이다. 언제가도 실패하지 않는다. 가격도 괜찮고 양도 많다. 맛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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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기 간행물/먹고나서 생각하기 김야매 2020. 9. 19. 23:09
코로나가 극성이라도 먹어야 살 수 있다. 오늘은 집 근방 순대국집을 들렀다. 짙은 국물과 야채순대로 서울에서도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나름 동네 자랑거리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유명한 순대국집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한창 진행되던 토요일 저녁 7시 경. 매장에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어떻게 매번 집밥만 먹고 사느냐는 생각은 나만 했던 게 아닌 모양이다. 매번 먹던대로 순대국 보통을 하나 주문했다. 공용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다 멈칫했다. 수저에 이물질이 묻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입으로 들어가야할 숟가락과 젓가락들이 관리없이 방치되어 있는 것이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 누군가 물수건으로 닦지도 않은 손으로 수저를 뒤적거렸을 상상이 뒤따랐다. 그 손에 묻어 있었을..
비정기 간행물/먹고나서 생각하기 김야매 2020. 9. 4. 22:46
맥주만으로 필름이 끊길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게된 날은 2014년 4월 16일이었다. 그 날 나는 후쿠오카 행 일본 배에서 밤을 보냈다. 배 한켠에는 온갖 종류의 자판기가 있었다. 자판기는 스낵, 음료는 물론 튀김이나 야끼소바까지 취급했다. 동전을 넣으면 제품이 아니라 요리가 나왔다. 자판기가 즉석으로 조리한 뜨끈한 야끼소바였다. 어쩐지 일본스럽다고 생각했다. 내 동전을 가장 많이 가져간 건 맥주 자판기였다. 500ml 아사히 캔맥주가 아마 200엔쯤 했다. 싸다고 호들갑을 떨며 친구와 열 캔을 넘게 뽑아 먹었다. 인당 열 캔이었다. 맥주 5리터를 족히 먹었으니 기억을 잃을만도 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선실이었다. 일본인 승무원이 나를 깨웠다. 일본어로 뭐라뭐라했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승..
비정기 간행물/먹고나서 생각하기 김야매 2020. 7. 27. 00:19
할 일이 있을때면 카페를 간다. 주로 가는 카페가 있긴 하지만 가능하면 다양한 곳을 다니려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마 매번 같은 곳만 가면 지루하니까? 이 과자를 서비스로 주는 카페는 집 근처에 있다. 프렌차이즈지만 대기업은 아니고 영세한 이미지가 있는 소규모 커피 체인점이다. 메론 빙수가 유명하다던데 먹어본 적은 없다. 사실 자주 들리는 카페는 아니다. 언젠가 커피 값이 옆의 대기업 카페보다 천원쯤 싸다길래 가본 적 있는데 그때 기억이 좋지 않았다. 내 주문을 받은 건 알바생이었는데 마침 근무 교대 시간이었는지 사장님이 나타나 카운터를 이어받았다. 알바생이 퇴근하자 사장님은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그 알바생을 한참 흉봤다. 타당한 이유가 있는 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뒷담화..
사는 일 김야매 2020. 1. 5. 17:27
나는 강호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오버스러운 개그 스타일이 싫었다. 강호동보다는 깔끔하고 소탈한 진행의 유재석을 더 좋아했다. 1박 2일보다는 무한도전의 팬이었고, X맨에서는 강팀보단 유팀을 응원했으며, 쿵쿵따를 볼 땐 항상 당하기만 하는 유재석의 편이었다. 개그맨이 장래희망이던 어린 시절에도 나는 강호동을 싫어했다. 강호동 특유의 오버스러움이 나와 맞지 않았다. 오미자차 한 잔에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양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 것도, 수박 한 쪽 베어 물고 오만상 찌푸리며 오열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지나치게 느껴졌다. 과장된 그의 몸짓이 가식으로 다가왔다. TV에 1박 2일이 나올때면 나는 주저 없이 채널을 돌렸다. 며칠 전 유튜브로 라면 끓여 먹는 강호동을 보았다. 그는 천왕봉에 홀로 올라 버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