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흉보는 사장님과 맛있는 다과
- 비정기 간행물/먹고나서 생각하기
- 2020. 7. 27. 00:19
할 일이 있을때면 카페를 간다. 주로 가는 카페가 있긴 하지만 가능하면 다양한 곳을 다니려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마 매번 같은 곳만 가면 지루하니까?
이 과자를 서비스로 주는 카페는 집 근처에 있다. 프렌차이즈지만 대기업은 아니고 영세한 이미지가 있는 소규모 커피 체인점이다. 메론 빙수가 유명하다던데 먹어본 적은 없다.
사실 자주 들리는 카페는 아니다. 언젠가 커피 값이 옆의 대기업 카페보다 천원쯤 싸다길래 가본 적 있는데 그때 기억이 좋지 않았다. 내 주문을 받은 건 알바생이었는데 마침 근무 교대 시간이었는지 사장님이 나타나 카운터를 이어받았다. 알바생이 퇴근하자 사장님은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그 알바생을 한참 흉봤다.
타당한 이유가 있는 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뒷담화를 들어야 했던 나는 유쾌하지 못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 할수록 더 잘 들린다. 내용이 특히 거슬릴때마다 사장님께 눈길이 갔다. 자꾸 흘끔거리다가는 나도 통화의 주인공이 될 것 같아서 참으려 애썼다.
아무튼 그 날이후로 그곳엔 발길을 끊었다. 옆의 대기업 카페는 비싼데다 와이파이도 원활치 않아서,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또다른 영세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주로 다녔다. 그러고보니 겨우 도로 하나 두고 프렌차이즈 카페가 세 군데나 모여 있다. 바야흐로 카페 전성시대긴 한가보다.
어쨌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 카페에 다시 들렀다가(아마 매번 같은 곳만 가니까 지루해서?) 사진의 과자를 먹었다. 이미 첫인상이 좋지 않은 곳이라 딱히 큰 기대 없이 받았다. 구색 맞추기 정도로 생각했다. 맛과 관련없이 가장 저렴해서 구비해놓은 다과가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들더라.
오트밀이라는게 독특해서 사진부터 찍어놨다. 그리고 생각없이 와삭 깨무는데 깜짝 놀랐다.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곡향이 입안에 스르르 퍼진다. 쌉쌀한 아메리카노에 적당히 어울리는 단맛 덕에 커피 디저트로도 그만이었다.
아무렇게나 가져다 놓은 싸구려 다과는 아니었다. 알바생에게는 못됐을지언정 손님 먹을 디저트는 세심하게 고르는 사장님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업장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두 행동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온 거겠지만.
내 돈 내고 군것질을 잘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건 너무 맛있어서 검색해봤다. 1kg에 6,500원. 배송비 2,500원은 별도니 사실상 9,000원이다. 그 자리에서 주문하려다 잠시 결정을 유보했다. 가격에 비해 양이 너무 푸짐한게 문제였다. 우유코팅 달콤한 것이 살 찌는데 직빵일게 분명한데 매일 이걸 1키로나 먹을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게다가 맛이 좋으니 한 번에 여러 개 씩 까먹을테니까 더더욱 문제다.
집가서 좀 더 고민해봐야지 하다가 벌써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문 안했다. 아 그리고 한편, 맛있는 디저트에 마음이 풀렸을테니 이제 그 카페는 자주 가냐고? 아니다, 여전히 잘 안간다. 알바를 흉보던 사장님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단골이 되었다간 나도 뒷담화의 희생양이 될 것만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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