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에서 먹는 소소한 저녁의 꿈

퇴근 후 저녁은 맥도날드에서 먹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빅맥 세트가 담긴 트레이를 받아 구석자리로 갔다. 구석자리가 주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벽을 등지고 앉아 햄버거 포장을 벗기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구석자리에서 햄버거를 먹을때면 매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보인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동선이 자연히 시야에 들어온다. 집에 혼자 있으면 적적해서 듣지도 않을 라디오를 틀어놓듯, 혼자 햄버거를 먹자니 심심해서 눈으로 사람들의 동선을 쫓는다. 

 

내 앞 테이블에는 한 가족이 자리잡았다. 5살 쯤 되어보이는 아이와 그녀의 부모가 큼지막한 해피밀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양쪽으로 나눠 앉았다. 아빠는 방금 퇴근했는지 양복차림이었다. 일상복차림의 아이와 엄마는 마중을 나온 모양이었다.

 

아빠가 플라스틱 칼로 버거를 써는 동안 엄마는 아이 옆에 앉아 부산히 감자 튀김을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입으로는 감자튀김을 접접거리며 고개를 부지런히 두리번거렸다. 맥도날드 매장을 샅샅히 구경해버리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하긴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니까. 

 

가족은 각자의 고된 하루를 맥도날드에서 마무리하는 듯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세계를 구하고 햄버거집에서 뒷풀이를 하는 어벤져스가 겹쳐보였달까.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을 소소하게 기념하고 있었다.

 

나는 감자튀김과 빅맥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그 모습을 틈틈히 구경했다. 빤히 바라보진 않았지만 자꾸 눈길이 갔다. 햄버거 자르는 아빠의 긴장풀린 표정, 흘린 케찹을 닦아주는 엄마의 손길, 자른 햄버거를 홀린 듯이 먹는 아이까지. 햄버거 먹는 가족의 모습이 괜히 마음에 들었다. 평화로운 아우라가 맥도날드를 매장안을 은은히 밝혔다.

 

내게도 언젠가 저들처럼 함께 맥도날드의 평화를 즐길 날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감자튀김을 마저 집어먹었다. 나도 오늘 하루를 별일 없이 보냈단 사실을 혼자서라도 기념하기로 했다. 가족은 아직 천천히 세트 메뉴를 나눠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퇴식구에 트레이를 올려 놓고 맥도날드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그 가족 생각을 계속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나는 ‘평범한 날에 맥도날드에서 소소한 저녁 먹기’를 <언젠가 가족을 꾸린다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