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익스프레스와 핸드폰 납치사건

미국에 잠시 살던 때 일이다. 시내로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열차가 잠시 정차한 틈에 한 흑인 남성이 한인타운 곱창집을 검색하던 내 스마트폰을 낚아채 달아나버렸다. 역 부터 0.5마일 남짓 쫓아갔으나 그가 달아난 곳은 동양인에 비우호적인 동네였다. 깊숙히 들어갈 수 없어 추격을 포기했다. 동네 주민들은 나보다 도둑의 편이었다.

 

우연히 추격전을 목격한 한 백인 가족이 경찰 신고를 도와주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결국 핸드폰 없이 동네로 돌아가야 했다. 도착하니 해가 늦게 지는 LA임에도 어수룩했다. 그때 허탈한 마음으로 찾았던 식당이 바로 판다 익스프레스다. 

 

뒤쪽 접시에 들은 것이 오렌지치킨과 차우멘

판다 익스프레스는 미국식 중식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다. 만만한 식당이다. 언제가도 실패하지 않는다. 가격도 괜찮고 양도 많다. 맛있는 걸 찾느라 골머리 썩기는 싫지만 맛없는 걸 먹고 싶지도 않을때 편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그 날도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미국에 도착한지 한 달쯤 되던 때였다. 아직 먹는 음식마다 사진을 찍던 시절이었다. 친구들은 오렌지치킨과 차우멘 위로 카메라를 들이 밀었다. 나는 못본체 포크를 깨작 거렸다. 내가 한 달간 찍었던 사진은 모두 스마트폰에 들어있었다. 

 

허탈했다. 야속한 그 도둑은 왜 내 갤럭시 노트5를 들고 갔을까. 2년 반을 써서 감가상각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만큼 노쇠한 핸드폰이었다. 도둑도 장물아비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온갖 사진과 메모가 담긴 그 핸드폰은 내게만 소중한 물건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진은 구글 드라이브에 자동으로 백업되고 있었다! 수년간 모아둔 메모는 모두 날아갔지만.)

 

그걸 알았다면 도둑도 내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값어치 없는 핸드폰을 위해 1km 쯤 전력질주할 사람은 없을테니까. 게다가 경찰에 검거될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그 도둑도 내 핸드폰에 꽤 많은 걸 걸었던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황이 코미디 영화마냥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그 날 찍은 사진은 아니구여..

다음날에는 새 핸드폰을 사러 한 전자제품 판매점을 찾았다. 혼자 가야했다. 친구 핸드폰으로 가는 길과 버스 번호를 검색해서 외웠다. 스마트폰 없는 LA의 길은 낯설었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수상했다. 나를 다시 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의 걱정에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은 체 했었지만 실은 두려웠다. 

 

가장 저렴한 제품을 판다는 전자제품 판매점도 내가 만족할 만큼 저렴한 제품을 팔지는 않았다. 나는 핸드폰 없이 매장을 나왔다. 더운 날이었다. 횡단보도에 서서 건너편 정류장에서 집 가는 버스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야속하게 내 앞에서 신호를 바꾼 신호등에게 화가 났다. 신호가 다시 바뀌기 전에 나는 그 분노가 사실 외로움이었단 걸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서 아마존으로 핸드폰을 주문했다. 이틀만에 배송됐다. 정작 새로운 핸드폰을 손에 쥐고나니 그간 겪어온 감정은 일순 추억이 되었다. 더 이상 그 감정은 내게 머무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저장되지 않은 새 핸드폰에 나는 새로운 감정들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뒤에서 접근하는 인기척을 느끼면 흠칫 놀라고 몸에 힘이 들어가곤 한다.)

 

판다익스프레스 여의도IFC 점

하지만 판다 익스프레스를 먹을때면 여전히 그 날의 감정이 떠오른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슬픔, 허탈함, 우스움, 두려움, 분노. 핸드폰 납치 사건에 관여됐던 모든 감정이 오렌지 치킨 소스 맛에 조금씩 담겨있다. 나는 판다 익스프레스를 먹을 때 그날의 기억을 맛본다. 

 

악독한 경험이지만 판다 익스프레스의 익숙한 맛과 함께할 때만큼은 추억이다. 새콤달콤한 소스에 푹 젖은 오렌지 치킨을 씹으며 감상에 빠진다. “고생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더라”라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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