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은 사라지지 않아

편의점 ATM에서 돈을 인출한다. 수수료가 아까워 3만원을 뽑는다. 사실 필요한건 3천원 남짓. 붕어빵을 먹기 위해서다. 현금 없는 사회가 목전이라지만 붕어빵의 세계에선 아니다. 여전히 현금 없이 사먹기 어렵다. 기껏해야 3천원 어치 사는데 계좌이체하기도 우습다. 그게 불만이라는 건 아니다.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도 나는 붕어빵이 먹고 싶다. 

 

집을 중심으로 도보 가능 거리인 15분을 반지름 삼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면 나의 생활 반경이 나온다. 그 원 안에 붕어빵 노점이 몇 군데 있다. 그 중 최고로 치는 곳은 보라매역 근방의 한 노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팥이 가득하다. 꼬리까지 팥이 가득찬 붕어빵은 흔치 않다. 

 

뽑은 돈을 들고 붕어빵 노점 안으로 들어간다. 철제 망 위에 붕어빵이 잔뜩 도열해 있다. 그런데 사장님이 없다. 화장실이라도 가신 모양이다. 좁은 천막 안에서 붕어빵들과 함께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장님을 기다린다. 어색하다. 다음을 기약하며 노점을 나오려는 순간 저 멀리서 사장님이 영업한다고 급하게 소리치며 달려온다.  


2,000원을 건네고 붕어빵 6마리를 받았다. 이미 구워져있는 붕어빵을 두고 긴 대화는 필요없었다. 쿨거래 후 노점을 빠져나왔다. 머리부터 베어 문 붕어빵은 역시나 맛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팥이 가득하다. 올해도 놓치지 않고 다행히 붕어빵을 먹었다.  

 

얼마 전에 붕어빵 노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원재료 값은 상승하는데 붕어빵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여전히 낮기 때문이란다. ‘천원에 5마리’라는 인식이 팽배해서 제 값을 받으려고 하면 손님이 급감한다는 것이다. 붕어빵이 천원에 두 마리라고 생각하니 나조차 어쩐지 저항심이 생긴다.

 

그런 이유로 붕어빵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다. 언젠가부터 체감하던 일이다. 붕어빵 찾기가 갈수록 어렵다. 특히 올해 코로나 여파로 거리 점포들이 사라지면서 더욱 감소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붕어빵 보기는 더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붕어빵을 먹고 싶다. 현금을 내는 불편을 감수하고, 천원에 두 마리 밖에 살 수 없을 지라도 뜨끈한 종이 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가는 길에 시린 손으로 하나 씩 빼먹는 바로 그 맛. 그 맛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충만해진다

이대로 붕어빵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10년쯤 더 지나고 나면, 그땐 그랬지하며 과거를 추억할 때만 간간히 나오는 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마치 폴더폰이나 원더걸스처럼. 겨울 동안 부지런히 붕어빵 사먹기 정도를 제외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어 더 슬프다. 

 

한편으로는 음식이 사라지는 것도, 때가 되면 생명체가 죽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태된 음식은 사라지고 새로운 음식이 나타난다. 이별은 슬프지만 세계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굴러 2020년에 이르렀다. 여태 그렇게 사라져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음식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같은 생각을 하며 붕어빵을 마저 먹었다. 집 가는 길에 하나씩 빼먹다보니 가족들이 먹을 것도 남지 않았다. 

 

대동풀빵여지도

붕어빵의 멸종을 걱정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을 쓰다 ‘대동풀빵여지도’란 것을 발견했다. 구글 오픈맵을 이용해 붕어빵 노점 위치를 공유하는 지도다. 전국의 붕어빵 매니아들이 수백 여개의 붕어빵 점포를 지도에 빼곡히 기록해놨다. (우리 집 주변 붕어빵 노점도 추가하려했는데 무슨 일인지 위치 추가가 안된다.)

 

아직 붕어빵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식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되는 일은 기쁘다. 생존자 마을을 찾은 좀비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반갑다. ‘대동풀빵여지도’와 거기에 우수수 찍힌 좌표들을 보니 최소한 내 세대에 붕어빵이 사라질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어쨌든 이번 겨울에는 붕어빵을 더 자주 먹어야겠다. 작년에도 첫 붕어빵을 먹던 날 이렇게 결심했던 것 같다. 그때는 나의 퇴근보다 붕어빵 사장님의 퇴근이 더 빨라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 다행히 올 겨울 나는 백수다. 붕어빵이 유독 추울 나의 겨울을 지켜주길 바래본다.


 

덧, 알고보니 잉어빵과 붕어빵은 다른 음식이었다. 속에 팥이 비치고 겉표면이 바삭한 붕어 모양 풀빵은 잉어빵이고, 속이 비치지 않고 겉표면에 갈색빛이 일정하게 도는 붕어 모양 풀빵을 붕어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더 알고보니 잉어빵과 붕어빵의 반죽을 생산하는 회사가 달라 이런 차이가 생겼단다. 알면 알수록 깊은 붕어빵의 세계다. 

 

덧2, 대동풀빵여지도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알고보니 누군가 지도에 자꾸 사보타지를 놓아 제작자가 편집을 막아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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