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각류 알레르기와 생체실험

거의 20년이 됐다. 간장게장을 못 먹은지 말이다. 오래 참았다. 차라리 그 맛을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그 녹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알아버렸는데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니, 이건 고문이다. 갑각류 알레르기를 인권위원회에 고소라도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익히지 않은 갑각류를 먹으면 목구멍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올라오고 참을 수 없이 가렵다. 곧 입술이 붓고 눈도 가려워진다. 심할 때는 숨 쉴 때마다 쌕쌕하고 바람 새는 소리까지 난다. 간장게장, 양념새우, 간장새우, 단새우 회.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 어떨 때는 익힌 새우에도 알러지 반응이 와서 그냥 갑각류 자체를 멀리해왔다.

 

눈 앞에 있어도 먹을 수 없었던 간장새우

처음으로 이 증상을 발견했던 것은 20여년전 한 게장집이었다. 가족끼리 외식하는 자리였다. 게장을 한창 먹는데 어쩐지 목구멍이 가려웠다. 먹느라 바빠서 무시하려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신경쓰여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목구멍이 좁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목구멍이 부어버린 것이다. 참을 수 없이 간지러운데 긁을 수가 없어 괴로웠다. 밥알을 씹지 않고 세게 삼켜서 목구멍을 긁었다. 가족들도 당황했다. 입술과 눈이 붓고 호흡도 힘들었다. 식당 한 켠에 조금 누워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조금 나아졌다.

 

원래 알레르기가 좀 있는 편이다. 개털, 고양이털은 물론 집먼지 진드기, 담배 연기를 비롯해 이것저것에 반응이 온다. 어릴 때 병원에서 검사를 해봤더니 그랬다. 다양한 알러지 성분을 묻힌 바늘로 왼 팔을 콕콕 찔러 반응을 보는데, 찌르는 족족 부어올랐다. 나중엔 아파서 그만해달라고 애원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식의 검사였다

그래도 그나마 먹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땅콩 없는 세상, 복숭아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 싫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갑각류에서 알러지 반응을 발견했다. 게장 집에 누워있을 땐 그 상황이 너무 괴로워서 갑각류 알러지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미 나는 간장게장의 맛을 알아버렸기에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게장이 먹고 싶은 날이면 그저 꾹 참는 것말곤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먹어보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텐데. 게장이 얼마나 맛있는지 몰랐더라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한 떨기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희망은 담배에서 발견했다. 나는 원래 담배 연기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래서 어릴땐 피시방에 오래 있지 못했다. 지독한 연기에 눈이 금방 가려워져 게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심지어 군대까지 다녀온 후의 어느 날, 술을 먹다가 무심코 담배를 피워봤다. ‘피워도 알레르기 반응 안 온다,’ 왠지 그런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술자리에는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 나와 불편한 선배, 둘 밖에 없었다. 다들 담배를 피우러 나가던 순간, 담배냐 선배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술까지 먹어 판단력까지 마비됐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피워도 멀쩡했다. 알레르기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담배 연기에는 아무렇지 않게 됐다. 피시방도 금연이 됐으니 딱히 좋을 건 없었지만 어쨌든 알레르기가 사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갑각류 알레르기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엄청난 수확이었다. 대신 그 대가로 담배를 한 1년 정도 피우긴 했다. 원래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찾아보니 알레르기는 원래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어릴 때 있던 알러지는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20대에 생긴 새우 알러지가 30대가 되니 사라졌다는 후기를 보기도 했다. 희망찬 소식이었다. 나도 그럼 다시 간장게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먹지 못하고 보내야 했던 단새우 초밥

그걸 알아보려면 생체실험이 필요했다. 실험 대상은 당연히 나다.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갑각류 알러지가 사라지기를 바랐음에도 막상 실험을 해보려니 두려웠다. 알러지로 고생해본 사람은 안다. 목이 붓고 눈이 가렵고 입술이 따끔한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실험이란 명목으로 내게 자행할 순 없었다. 그것 역시 인권 침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직감이 오기 시작했다. 왠지 단새우 회는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그런 직감이 마치 담배를 처음 피우던 때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체실험을 조만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어렴풋이 마음만 먹고 있던 생체실험을 최근 진행했다. 역시나 술의 힘이 컸다. 술집에서 모듬회를 시켰는데 우연히 단새우 회가 있었다. 일단 동행자에게 양보하고 다른 회부터 먹어치웠다. 그러나 자꾸 눈에 들어오는 붉고 촉촉한 새우의 자태. 참을 수 없었다. 결국 한 잔 깊게 들이키고 단새우를 입에 넣었다. 

 

이 새우를 먹었다

혀에 닿는 그 촉촉하고 달큰한 맛. 씹을수록 입안 가득 퍼지는 녹진하고 생기있는 새우의 풍미.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생 갑각류였다. 20여년 전 마지막으로 먹었던 그 게장의 맛과 기억의 끈이 살포시 이어졌다. 아! 이런 맛이었지.

 

행복한 때는 한 순간. 이제 실험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만약 아직 알러지가 남아 있다면 5분 안에 반응이 올 것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술만 계속 들이켰다. 속이 살짝 얼얼한 것도 같은데 새우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되뇌인 5분이 지났다. 나는 멀쩡했다. 목구멍도 가렵지 않았고 입술도 붓지 않았으며 눈도 이상없었다. 드디어 갑각류 알러지를 벗어난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나를 억누르던 것에서 드디어 해방된 기분이었다. 

 

갑각류 알레르기에는 사실 억울하게 죽어간 꽃게들의 원한이 담겨있는게 아닐까 출처: Pixabay

 

물론 아직 실험 횟수가 모자르다. 그 날은 우연히 괜찮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 갑자기 생겼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알러지인 만큼 다시 재발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간 먹고 싶었던 것을 먹어보는 것은 어디에 비할 데 없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스시집에서 단새우를 빼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제주도에 가서 딱새우회를 먹을 수도 있다. 소주 안주로 간장새우도 먹고 싶다. 그리고 한 두번쯤 더 생체실험을 하고 나서도 상태가 괜찮다면 게장을 먹으러 가볼 생각이다. 20년만에 먹는 게장은 분명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달콤할 것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나처럼 알러지가 사라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생체실험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반드시 조심해야한다. 다만 내 경우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었고 알러지가 사라졌다는 확신이 꽤 있었기에, 알레르기 발생 시 도와줄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시도한 것이었다. (원래 생새우에 간접 접촉만 해도 반응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선 간장새우 국물에 밥을 비벼 먹어도 이상이 없었다) 물론 이 역시 그리 현명한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혹시라도 무리하게 알레르기 반응 실험을 하는 분이 계실까봐 주의하시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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