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1인분 계량과 500원의 상대성

파스타 1인분을 계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각종 티비 프로그램과 유튜브에서는 검지와 엄지로 면을 말아쥐었을때 단면이 500원 동전 크기면 성인 남성 한 명이 먹기에 적당하다고 말한다. 거 참 무책임한 말이다. 도대체 누가 요리하는데 주방에 500원을 들고 간단 말인가. 

 

설령 우연찮게 앞치마 주머니에 동전이 하나 있었다고 해보자. 그래도 동전 크기로 파스타 양을 맞추라는 것은 여전히 실용적인 조언이 못 된다. 세균이 득실한 500원 짜리 동전과 파스타면을 번갈아가며 주물럭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기억은 안나지만 언젠가 해먹었던 연어파스타

 

결국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머리 속에 500원짜리 동전을 그려 놓고, 파스타 봉지에서 면을 한 움큼 꺼내 쥔 다음 그 가상의 동전에 빗대어 가며 크기를 가늠한다. 그런데 이 동전은 아무래도 실체 없이 내 맘 속에만 존재하다 보니, 기분따라 지름이 조금씩 변한다. 배가 고픈 날에는 눈치 못 챌 만큼 슬그머니 늘어나고, 마음이 허한 날에는 대놓고 두 배는 족히 커진다. 그러니까 500원 동전 크기로 파스타 1인분을 계량하라는 말은 결국 먹고 싶은 만큼 알아서 꺼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기왕 무책임할 바에야 차라리 500원짜리 동전은 저 멀리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혹은 저금통에 넣어버리고, 이렇게 1인분을 계량해보는게 어떨까. 

 

1. 당신의 위장을 마음 속으로 그리세요. (복부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상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2. 위장에 들어갈 만한 양의 파스타 면을 봉지에서 꺼냅니다. 지금은 면이 빳빳하지만 익으면 유연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면이 위장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으로 상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3. 배가 많이 고프지 않다면 위장의 50%, 적당히 고프다면 80%, 매우 고프다면 110%을 채울 만큼 면을 꺼내 삶습니다. 왜 110%냐구요? 위장의 신축성과 면 삶는 시간 동안 진행될 소화 과정을 고려한 수치랍니다.

 

기억은 안나지만 언젠가 해먹었던 깻잎참치파스타

1인분은 상대적이다. 나의 1인분과 천하장사 강호동의 1인분은 결코 같을 수 없을테니까. 제 아무리 ‘국제 파스타 1인분 올바르게 정하기 협회’ 같은 곳이 있고 거기서 정한 ‘국제 파스타 1인분 계량형 = 100g’ 같은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다 먹을 수 있어야 1인분이고 먹고 배부를 수 있어야 1인분이다. 

 

어쩐지 이야기가 명왕성마냥 핵심에서부터 한참 이탈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러니까 내가 오늘 말하고 싶었던 결론은…… 파스타 1인분에 연연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2인분 같은 1인분의 파스타를 해먹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