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카페와 뉴노멀에 적응하기
- 비정기 간행물/먹고나서 생각하기
- 2020. 11. 26. 15:44
이디야에서 테이크아웃해온 커피를 식탁 위에 놓았다. 거실 테이블에 있던 간식거리를 조금 챙기고, 내 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와 커피 잔 옆에다 펼쳤다. 제법 그럴듯한 홈 카페 모양새가 됐다. 무언가 모자란듯 싶어 최근 선물 받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로파이 힙합을 틀었다. 드럼비트가 집 안을 메우자 이곳은 영락없는 카페의 모습이다.
기세가 조금 꺾였나 싶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나 다를까 다시 수도권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2단계로 격상됐다. 지난 여름처럼 9시 이후로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카페는 개인, 프랜차이즈 할 것 없이 포장 판매만 허용된다.
카페에서 글 쓰는 것이 일상인 내게는 조금 가혹한 조치다. 물론 카페 주인장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은.. 다만 이렇게라도 해야 코로나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무를 수 있다 하니 따르는 수 밖에 없겠다. 지난 여름에도 이렇게 바이러스를 잠시 누그러 뜨렸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쩐지 이번에는 “지금만 참고 나면 앞으로는 괜찮아질거야”라는 이야기를 내기가 어렵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코로나는 조만간 수그러들더라도 아마 머지않아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번 2단계 조치가 마지막 관문이라면 참 좋을텐데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위드 코로나’, ‘뉴 노말’ 같은 단어에 벌써 익숙해졌다.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한다는 뜻이다. 예전의 방식을 완고하게 고집할 수 없게 됐다. 타협과 적응이 필요한 시기다.
집에서는 절대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믿던 내가 식탁에 카페를 차린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막상 해보니 새로운 작업 환경이 꽤 마음에 든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베란다 너머로 오전 햇살이 슬그머니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확신할 수 있었다. 점심에는 스피커 볼륨을 올리고 주방에서 파스타를 해먹었다. 카페에선 느낄 수 없던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있었다. 내일도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식탁에 놓고 노트북을 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새로운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 지는 것이 아닐까. 은은한 마늘기름 향이 맴도는 식탁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저 쭉 빨아 들이고 나는 다시 노트북에 양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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