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돌이와 위스키, 아이와 어른 사이

위스키를 마시러 어느 바에 갔다가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꾀돌이. 하얀색과 갈색의 콩 모양 과자다. 꼬맹이 시절 종종 먹던 50원짜리 불량식품인데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꾀돌이를 유독 좋아한다.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쯤이었을까. 아파트 단지에서 동네 형들이 내 손에 꾀돌이를 한 움큼 쥐어줬다. 나와 같은 태권도장을 다니는 형들이었다. 그때 내 눈에 그 형들은 마냥 멋져보였다. 심지어 내가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우리 반에 찾아와 괴롭히는 애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내 인생에서 든든한 빽이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그 형들을 우러러 봤을까. 그때 내게는 그들이 마이클 잭슨이고 서태지였다. 그런 사람들이 내게 꾀돌이를 나눠줬다. 조막만한 손에 한 움큼 은혜를 입고 집으로 가는데 하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12층. 계단을 올라야 했다. 짧은 다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지난한 역경이었다.

 

계단을 오르며 손에 쥐고 있던 꾀돌이를 먹었다. 한 움큼 밖에 없으니 그게 선두라도 되는 양 아껴 먹었다. 한 층 오를 때 마다 한 알 씩. 고통스런 계단 오르기가 한 세트 끝날때 마다 스스로에게 주는 달콤한 보상이었다. 그 달달한 콩알 모양 과자의 맛이란. 거기에 힘을 얻어 간신히 집까지 왔다.

 

대용량 인간사료로도 팔고 있더라. 심지어 생긴거도 진짜 사료 같아

가끔씩 그때 생각을 한다. 그리곤 그 달달한 맛을 떠올리곤 했는데, 한동안은 이 과자 이름이 기억 안났다. 다시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다. 이름을 다시 떠올린 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우연히 술집에서 안주로 만났는데 같이 있던 사람이 꾀돌이란 이름을 알려줬다. 검색해보니 그 봉지 디자인이 맞았다.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자주 사먹지는 못했다. 주변에 파는 곳이 없었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니 양이 너무 많았다. 반갑긴한데 굳이 발품 팔아가며 까지 사먹고 싶지는 않았다. 의지가 모자른 탓일까, 어린시절을 떠올리기엔 너무 바빴던 탓일까. 그렇게 꾀돌이는 다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던 와중, 위스키 바에서 다시 꾀돌이를 만났다. 아이러니하다. 어른들의 음료인 위스키를 마시러 와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꾀돌이를 보다니. 이거 되게 상징적이네요. 어른이 되고 나서는 힘든 일이 있으면 술을 마신다. 이젠 위스키가 나에게 주는 보상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옛 과자. 꼬맹이 시절이 그리운 건 아니지만 간간히 생각하다 보면 금세 추억에 잠긴다. 

 

꾀돌이를 안주 삼아 위스키를 마셨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먹던 그때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달달한 콩알 겉면이 위스키의 바닐라 향과 잘 어울린다. 그야말로 추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나저나 그 형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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