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저녁] 신촌/서강대역 - 바질, 닭 그리고 와인과 함께한 좋은 시간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0. 17. 20:40
왁자지껄하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흠뻑 취하며 노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좋은 사람과 좋은 분위기에서 조용히 잔을 부딪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괜찮을 선택이 될만한 식당, 조용한식탁입니다.
서강대역에서 오는 것이 가장 가깝지만 신촌역 8번출구에 내려서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지도를 잘 보고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면..
식당이 이렇게 찾기 힘든 곳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간판도 크지 않아 더더욱 찾기 힘듭니다. 그냥 지도 보고 걷다가 여긴가 싶은 곳이 있으면 그곳이 아마 맞을 겁니다. 정말 음식점이 없을 것만 같은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조용한 식당입니다.
매장 내부는 테이블 없이 바 형식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ㄱ자 모양으로 대략 1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규모. 7시 예약을 하고 맞춰 갔을 때 가게 좌석은 거의 차 있었습니다. 참고로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한시간반인가 두시간인가 그정도.
메뉴 구성은 전체적으로 와인을 곁들이기 좋은 간단한 요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와인 잘 모르지만, 왠지 밥만 딸랑 먹고 가기는 아쉬운 마음에...
사장님께 와인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저희가 주문한 메뉴들을 죽 훑어보시더니 화이트 와인 두 잔을 추천해주셔서 그대로 주문했습니다.
솔직히 와인 잘 모르는 저로서 이 와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곤, 왼쪽이 한잔에 만원짜리 와인, 오른쪽이 만오천원짜리 와인 정도 입니다. 서로 번갈아가면서 마셔보니 같은 화이트와인이라도 맛의 차이가 큽니다. 좌측 와인은 달달하고 우측 와인은 부드러운 산미가 있습니다. 제 입맛에는 더 비싼 녀석이 더 좋습니다. 가격 때문이 아니라 향이 부담없고 질리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나올 때 까지 와인에 대한 정보를 디깅해봤습니다. 좌측 와인은 스페인에서 나는 베르데호라는 포도 품종으로, 우측 와인은 이탈리아의 베르멘티노 품종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상식이 늘어난 기분입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와인에는 좀 더 깊고 심오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또 새로운 장르의 음식에 빠지게 되는 것이겠죠.
우선은 가볍게 부르스케타로 시작합니다. 식전빵 같은 느낌으로 먹어줍니다. 위에는 가지와 리코타치즈, 아래는 바질페스토와 버터 비슷한게 올라 갔습니다. 빵은 바삭하게 구워졌고 그 위로 올라간 재료들이 그 멍석 위에서 맛을 담당합니다. 가지도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질 페스토가 더 좋았습니다. 사실 오늘 이 곳에 온 큰 이유 중 하나는 간만에 제대로 된 바질 페스토가 먹고 싶어서였습니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선한 바질 페스토에서 생동감이 입으로 전해집니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배채울 수 있는 메뉴가 등장합니다. 일단 닭다리 구이 입니다. 그냥 닭다리를 구워내 매시드 포테이토와 머스타드, 그리고 토마토 소스와 낸 것입니다. 일단 겉보기로도 아주 잘 구워진 모습입니다.
닭고기 자체에는 간이 거의 되어 있지 않은 편입니다. 닭고기만 찍어 먹었을 때는 밍밍하고 오히려 약간의 누린내 비슷한 것이 납니다. 또 보기에 따라서는 게미(gamey)한 맛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게는 크게 불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매력으로 다가오지도 않는 그런 누린내였습니다. 어쨌든 밍밍한 닭고기는 소스와 함께 먹을 때 그 풍부한 맛을 드러냅니다. 기본적으로 제공 되는 두 가지 소스를 번갈아 먹습니다. 상큼한 토마토 소스도,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도 둘 다 아주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제가 이 요리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기름에 푹 젖은 매쉬드 포테이토 였습니다. 닭 기름이 으깬 감자의 해변을 감싸고 있는 바다 같습니다. 대충 보기에는 조금 갸우뚱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왜 매력적인거지?라는 궁금증은 기름에 젖은 감자를 먹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풍부한 지방맛이 감자의 탄수화물에 더해 입혀질 때 시너지 효과가 강렬하게 일어납니다. 물론 입안은 금새 느끼해지지만 그럴 때 마다 와인 한 모금으로 깔끔하게 리셋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닭기름 젖은 감자는 소스와 함께 먹을 때 더더욱 빛났습니다. 지방은 기본적으로 맛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 즉 기름은 그 자체로만은 느끼하고크게 매력적인 맛을 내지 못하지만, 짠맛, 새콤한 맛과 같은 다른 맛과 더해질 때 풍부하고 깊은 맛을 더함으로써 그 본격적인 잠재력을 바깥으로 표출합니다. 강력한 기름의 유혹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뒤이어 나온 메뉴는 바질 페스토 파스타입니다. 삶아 낸 얇은 면을 바질 페스토를 소스 삼아 비벼주고 그 위로 부라타 치즈를 얹어 냈습니다.
부라타 치즈의 속부터 갈라 파스타와 잘 비벼준 후 먹으면 됩니다.
바질향이 베이스로 깔리고 오일과 치즈, 크림이 어우러져 아주 농후하고 꾸덕한 맛을 냅니다. 앞서 부르스케타에서 맛봤을 때의 바질 페스토 정도라면 굳이 치즈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잠시 했으나, 먹어보니 이 쪽이 꾸덕한 맛을 좋아하는 제 입맛에는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느끼해 질 때는 새콤한 토마토나 산미 있는 와인으로 맛을 잘라주면 됩니다. 하지만 느끼함을 좋아하지 않는 동행자에게는 조금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맛있지만 금방 물려버리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와인 한잔을 곁들이며 식사하기 좋은 식당입니다. 조용한 분위기가 필요하다면 괜찮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저녁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정기 간행물 > 고메 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라이켄, 서울대입구역 - 진하고 깔끔하게 돈코츠, 강렬하게 니보시쇼유 (0) | 2019.10.19 |
---|---|
사루카메, 연남동 - 혀뿌리까지 감칠맛이 전해지는 라멘 (0) | 2019.10.18 |
[황평집] 을지로 - 찬 바람 불어 오는 날의 닭요리 (0) | 2019.10.15 |
[무타히로] 홍대입구/연남동 - 더 쎄게, 더 진하게 (0) | 2019.10.12 |
[은하갈비] 부산/초량 - 갈비 간의 양념 빈부격차 해소를 기원하며 (0) | 2019.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