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갈비] 부산/초량 - 갈비 간의 양념 빈부격차 해소를 기원하며

2박 3일 부산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산역에서 기차타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일정 바로 직전에 해야할 것은 부산역 근처에서 식사하기가 될 것입니다. 부산역 근처 초량 갈비 골목에 위치한 은하갈비에서 저녁을 먹은 이야기입니다.

 

6시전에 도착했더니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다먹고 나올때는 벌써 웨이팅이 생김

부산역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초량 갈비 골목이 있습니다. 양념 갈비를 파는 가게들이 잔뜩 줄을 서 있는데, 저는 그 중 가장 유명한 은하갈비를 가기로 했습니다. 부산 토박이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게 외관에 TV 출연 소식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습니다. 물론 티비 많이 나왔다고 항상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 방송에 까지 나올 정도라고 하니 나름 기대가 됩니다.

 

먹고나서 다른 블로그를 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8,000원이었던 듯

주문은 3인분부터 가능합니다. 둘이서 가도 3인분을 시켜야하는 시스템. 무언가 이상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따지다가 쫓겨나면 속상하니까 그냥 양념갈비 3인분을 시켰습니다. 요새 젊은 것들은 투쟁심이 부족하다 이 말씀 호호.

 

쌈이다
밑반찬들 우르르

밑반찬이 나옵니다. 쌈채소와 파절이, 마늘과 깻잎 등등이 나옵니다. 가장 우측하단에 있는 것은 양념갈비 소스입니다. 나중에 찍어 먹을 일이 생기기에 내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독특한 불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철 쟁판 가운데를 뚫어 부르스타 위에 올리고 다시 그 위로 불판이 올라갑니다. 아마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것 같습니다. 왜 이런 불판을 사용하느냐 하면 이 집 고기 굽는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양념 돼지 갈비 3인분 (27,000원)

굽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정확히는 졸이는 방식이 맞겠습니다. 호일을 접어 그 안에 양념 국물과 갈비를 넣어 줍니다. 불이 올라 양념국물이 데워지고 끓으면 그렇게 고기가 익어가는 방식입니다. 합리적인 조리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어도 어쨌든 흥미로운 방식이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된장찌개 (2,000원)
공기밥 (1,000원), 밥 상태 양호

된장찌개도 하나 시켰습니다. 다른 고기를 구워먹을 때는 안 그러는데 양념 갈비 먹을 때 만큼은 꼭 된장찌개가 있어야 합니다. 어릴 적 부터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념 갈비 실물을 보자마자 거의 기계적으로 된장찌개를 주문했습니다. 달달한 양념 갈비 뒤에 오는 짭찌름한 된장찌개, 이 원투펀치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흐린 연기 속의 갈비
끓어부러

양념이 부글부글 끓으며 고기가 익어갑니다. 고기가 중탕되기에 구워지며 나는 그 고소한 냄새는 없습니다. 대신 달달한 양념 냄새가 올라옵니다. 어느쪽이든 군침이 도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고기 구워먹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안나니 조금 아쉽습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진짜 맛있는 고기 맛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마이야르 아저씨는 마이야르 반응을 발견해내면서 이야기했었습니다.

 

다 끓었습니다

하지만 졸아들은 양념장도 맛있습니다. 양념장 안에 들었을 설탕성분들이 졸아들면서 더 깊은 향을 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캐러멜라이즈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냄새가 아주 좋습니다. 다 졸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종업원이 먹어도 된다고 할때까지는 먹어선 안됩니다. 어쩌면 요리가 덜 끝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점원 한 분이 지속적으로 와서 호일을 이리 저리 들추며 고기가 골고루 익도록 도와주십니다. 저도 거들고 싶지만 그러다 괜히 호일을 찢어먹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파 매워서 눈물나

드디어 먹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바로 한점 집어 먹습니다. 중탕한 고기에 양념이 졸아들며 아주 잘 달라붙었습니다. 파채에 싸서 함께 먹어줍니다. 다만 파채가 조금 지나치게 강렬합니다. 혀가 아릴 정도 입니다. 원래 이 정도의 매움이 정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기준에서는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더 빨리 넣을껄

생각해보니 마늘을 한 접시나 주신 것은 생으로 먹으라는 의미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냥 고기 호일 위에 싹 쏟아버렸습니다. 나중에 다른 블로그를 찾아보니 다행히 다들 그렇게 먹는 것 같습니다. 아주 본능적인 선택이었으나 동시에 아주 관습적인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타이밍은 조금 늦어서 고기를 다 먹을 때 쯤에야 마늘이 다 익었습니다.

 

양념 잔뜩 귀족 고기
70%만 익은 마늘과 함께

고기 부위별로 양념의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기는 양념이 잔뜩 달라 붙어 아주 달달한 반면, 어떤 고기는 양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음지에서 건조하게 익어 양념 갈비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으로 지방이 붙지 않은 온니 살코기 부위의 경우에는 다소 뻑뻑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애매하게 가열되어 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도 없고 양념도 제대로 스미지 못했으며 식감마저 뻑뻑한 하위 계층에 속하는 몇몇의 고기들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신분상승 중

그런 고기들을 구제하기 위해 바로 양념 갈비 소스를 따로 내주는 것이었습니다. 양념 종지에 불가촉천민 계급의 고기를 데굴데굴 굴리다 보면 어느새 신분 상승으로, 귀족까지는 못돼도 중산층까지는 넘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양념장에 오래 적셔 먹어야 하는 이런 천민 고기들에는 자연스레 손이 가지 않게 되고 저도 모르게 계속 양념으로 잔뜩 치장한 귀족 고기들만 집어 먹게 됩니다. 결국 불판 위에, 아니 호일 위에 남은 것은 오직 천민 고기들 뿐. 처량하게 남은 그 천민 고기들을 굳이 제 이빨로까지 씹어먹고 싶지 않아 그대로 남겨둔채 가게를 빠져 나왔습니다. 물론 나오기전에 계산은 하고 나왔습니다. 고기 한 판에서 사회를 배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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