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호짬뽕] 부산/마린시티 - 조금은 낯선, 그래서 반가운

부산에서의 첫 날은 비가 와서 관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날은 아침부터 관광을 하겠다 마음을 먹고 해운대로 다시 향했습니다. 분명 지하철을 탈때만해도 비가 오지 않았는데 지하철에서 내리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해운대 관광은 글렀다는 생각으로 그냥 짜장면을 먹으러 <라호짬뽕>으로 향했습니다.

 

마린시티, 꼬여있는 스크류바를 쭉 펴놓은 것 같다 

해운대 옆 마린시티를 지나 빌딩 숲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한자로는 뭐라 적혀있는 건지 모르겟다
인테리어 좋고

이렇게 라호짬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상가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찾아가기 난이도 별 세개 반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아파트 상가에 위치했지만 가게 외관과 인테리어는 꽤 고급형입니다. 잘 사는 아파트 상가인 모양입니다.

 

중국집 치고 가격은 좀 있는 편

메뉴는 이 정도. 중식당 치고는 메뉴가 간소합니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느낌일까요. 어느 중국집에서나 볼 수 있는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의 구성이지만 각각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메뉴에 대해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을 시도해보고 연구해본 흔적이 엿보입니다. 

 

냅킨샷
원래 안먹는 것 1, 2

기본찬은 단무지와 짜사이. 사실상 같은 식감으로 같은 역할을 하는 음식들이기에 둘이 동시에 나온다는 것은 뭔가 동어 반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서도 어차피 저는 안 먹는 찬들이니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간짜장 (8,000원)

우선 받은 간짜장. 서울의 천편일률적인 그 간짜장과는 모습이 조금 다른 듯합니다. 일단 반숙 후라이를 올려주는 것부터 아주 다르죠. 부산의 중식당에 대한 제 경험이 많이 모자르기에, 이 간짜장이 남부스타일 간짜장에 정확하게 부합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 상으로 봐오던 것과는 비슷하다는 느낌.

 

잘 볶인 채소맛이 좋다

비빈 후 시식했습니다. 밸런스 잡힌 맛입니다. 기본적으로 짜장면을 구성하는 가장 큰 두 맛의 축은 짠맛과 단맛입니다. 이를 기본으로 춘장의 향이나 약간의 쓴맛 등으로 짜장면에 표정을 불어 넣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짜장면 역시 그 문법에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습니다. 종종 너무 달달한 짜장면을 맛보게 되곤 하는데, 이 짜장면은 적당히 단 맛이 짠맛과 적절하게 쿵짝을 이룹니다. 거기에 반숙노른자가 면을 코팅하며 지방맛을 추가합니다. 우주 최고 짜장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굉장히 준수한 짜장면임은 틀림이 없는 듯 합니다.

 

원래 스리라차 개좋아하는데 개이득

아까 메뉴판에 따르면, 짜장면을 반 정도 먹고나서는 꼭 스리라차 소스를 뿌려먹어보기를 권합니다. 정신 없이 먹다보니 절반을 한참 넘긴 시점에서 문득 생각나 부랴부랴 스리라차를 투입했습니다. 스리라차 소스의 투입은 맛의 논리적인 측면에서 적확한 조치입니다. 결국 기름으로 볶은 짜장은 필연적으로 느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 지방맛에 매료되어 먹지만, 어느 순간 느끼함이 찾아오는 시점이 있을 확률이 큽니다. 특히 반숙 노른자로 지방맛의 깊이를 더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신맛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고 매콤한 스리라차 소스는 짜장면의 느끼함을 절단해주는 킥이 됩니다. 식사 중간에 들어오는 적당한 매콤함 역시 혀에 신선한 맛을 선사합니다.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두 가지 종류의 음식을 먹은 기분입니다. 전반전은 짜장면 그 자체의 풍부한 맛, 후반전은 스리라차와 함께하는 새콤매콤한 맛.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양주식 볶음밥 (8,000원), 양주는 경기도 양주밖에 모르는데욧
짜장 소스대신 생각보다 매운 소스와 함께나옴

짜장면이 만족스러웠다면 볶음밥은 어땠을까요. 저는 사실 볶음밥이 더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쌀알에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찰기가 있는 쌀을 씁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기에, 금방 포만감이 꺼지지 않는 자포니카 종의 쌀즉 찰기 있는 쌀―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긴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디카 종의 쌀―안남미라 부르는 훌훌 날라다니는 쌀―이 열등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부터 우리 쌀이 최고 좋은 쌀이라 알게 모르게 미디어에서 교육을 받아 온지라, 저도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안남미에 대한 뭔가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을 것 같고 맛도 별로 없을 거 같고 하는 식의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그런 인식을 갖게된 이유 중 하나는 안남미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었을까도 싶습니다. 실제로 한국 식당에서 안남미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소스 조금 넣어서 먹었음, 기름진 맛, 사실 없이 먹는게 더 좋았음 나는
볶음밥에 딸려나온 국물, 어떻게 먹긴했나 몰라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안남미를 씁니다. 한국쌀과 섞어서 쓰지만 그 비율이 높기에, 일단 한 수저 떠보면 확연히 느낌이 다릅니다. 파르르 흩어지는 밥알들. 입에 가져다 넣어보면 생각만큼 안남미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찰기 있는 쌀이 좋은 쌀이라는 우리의 인식은 어쩌면 편견이며 고정관념일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다른 건 몰라도, 볶음밥에 있어서는 안남미가 한국쌀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엉겨붙어 밥알 하나 하나에 기름이 코팅되고 맛이 분배되기 힘든 한국쌀보다는 원래부터 잘 흩어지는 안남미에 기름 위주의 양념이 코팅되기가 더 수월합니다. 미국에서 몇 번 안남미로 만든 볶음밥을 먹고 나서 그런 추측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볶음밥을 계기로 그 생각을 좀더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양념 대신 파기름과 계란에 적당히 짭조름한 간만 해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맛이 좋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을 조금 덧붙이면 그간 제가 중국집에서 먹어왔던 볶음밥들을 모조리 부정하는 맛입니다. 세상에 안남비 쓰는 볶음밥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짜장소스 없이도 충분히 즐겼습니다.

 

라짬뽕 (8,000원)

동행자가 먹은 짬뽕입니다. 저는 국물이나 한 두 스푼 떠먹었기에 할말이 없습니다. 저는 짬뽕보다 짜장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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