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일막창] 부산/해운대 - 관광보다 막창, 막창보다 전골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0. 5. 16:42
비오는 날 해운대에 막창을 먹으러 갔습니다. 원래는 바다를 보러 간 것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 그냥 막창만 먹고 숙소에 돌아 가기로 계획을 바꾼 것입니다.
해운대역 5번출구 앞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승일막창입니다. 원래 더 유명한 해성막창집을 가려 했으나, 비가 너무 많이 오고 그래서 그냥 역 앞에 있는 곳을 가기로 했습니다. 비 때문에 바다 구경에 이어 해성막창까지 포기한 것입니다. 역시 비오는 날 여행은 변수가 많습니다.
어쨌든 이곳도 나름 유명한 곳인 것 같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연탄을 놔주십니다.
가격은 소 막창/대창 치고 꽤 저렴합니다. 서울에서의 정신나간 가격을 생각하면 이정도는 아주 착한 정도입니다. 대신 구이는 최소한 3인분부터 시켜야한다고 합니다. 어차피 양이 그닥 많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막창 둘에 대창 하나를 시켜보았습니다.
밑반찬이 깔립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반찬들. 어차피 주인공이 아니기에 크게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본 게임 시작 전에 심심함을 달래려 조금 집어먹어보았는데, 딱 그정도 역할에 알맞는 무난한 맛이었습니다.
어쨌건 중요한 것은 고기니까요. 3인분이지만 그닥 푸짐하지는 않습니다. 푸짐하게 먹으려면 그냥 삼겹살집을 가는게 좋겠지요. 게다가 어차피 대창처럼 기름 가득한 부위는 느끼해서 많이 먹지도 못하니 불만 없습니다. 별식으로 먹어줄만한 막창대창.
사실 막창대창을 먹는 진짜 이유는 바로 소주. 붓싼에 왔으니 대선을 먹어줘야겠습니다. 씨원을 먹어야 진짜 부산 맛을 아는 거라던데 저는 서울 사람이라 그냥 대선을 시켰습니다. 기분탓일 수 있겠으나 대선은 뭔가 덜 독한 느낌, 소주 특유의 화학약품 맛이 밍밍하게 지나가는 그런 느낌입니다. 몇 백병은 먹었을 참이슬과 처음처럼도 아직 구분 못하는 제 혀이기에 그닥 신빙성은 없겠습니다. 그냥 여행와서 설레는 기분을 소주맛에 대입해본 것입니다.
알아서 구워주십니다. 고기 단가가 비싸면 비쌀수록 점원의 스페셜한 불판 케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삼겹살이야 대강 알아서 구워 먹을 수 있겠지만, 이런 특수부위들은 자주 먹는 것이 아니니 제대로 못 구울 확률이 높으니까요. 아무튼 제가 갔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계속와서 불판을 돌봐주셨습니다.
다 구워졌습니다. 약간 탄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크게 상관 없습니다.
막창에는 기본적으로 양념이 좀 되어 있어 달짝합니다. 양파 절임과 같이 먹어 시큼함을 추가하면 소주가 쑥쑥 들어갑니다. 막창 맛있는거 말해 뭐합니까. 꼬독꼬독하게 씹히는 식감도 좋습니다.
대창도 놓칠 수 없습니다. 느끼해서 많이 먹을 수는 없지만 막창보다 좋아하는 부위입니다. 뜨거워진 기름 때문에 잘 불어 먹어야합니다. 이때쯤 혀를 데였던 것이 분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씹으면 나오는 고소한 기름으로 입 안을 둘러 놓고 소주 한 잔으로 싹 쓸어내릴 때의 쾌감. 크으으으으으
당연한 말이지만 구이로는 배가 차지 않습니다. 바로 곱창전골 2인분을 주문합니다.
고기 굽는 동안 불판 밑으로 떨어진 기름의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역겹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만큼의 소기름이 내 입으로도 들어갔을 생각에 끔찍하기도 하고, 어차피 대창막창 먹으러 온게 저 기름 먹으러 온 것이니 남은 기름이 아깝다는 생각도 하고,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소주 한 병 더 시키면서 곱창전골을 팔팔 끓입니다. 안에는 소 곱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끓으면 끓을수록 소 곱에서 기름이 쭉쭉 빠져나오고, 그 빠져 나온 기름이 국물을 더 진하게 합니다. 졸여지기 전까지는 아직 국물이 진하지 않습니다. 국물 조금씩 떠먹으며 차분히 기다려야 합니다.
졸여진 국물은 아주 기름기가 가득해 걸쭉합니다.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국'물'이 아닌 국'기름'을 먹는 느낌입니다. 입 안으로 아주 얇게 기름막이 코팅됩니다. 기분 좋은 느끼함입니다. 동시에 양배추와, 양파를 비롯한 채소들에서 나온 채수가 국물에 달착한 맛을 더합니다. 입자 굵게 다진 마늘과 매콤한 양념장은 지나치게 폭주하는 지방맛을 잡아줍니다. 곱창에서 빠져나온 기름 때문에 맛이 극단으로 치우쳐져 있는 가운데 채수의 단 맛과 양념의 매운맛이 그 극단적인 맛을 불쾌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국물을 점점 빨아들여 퉁퉁 불어버린 당면이 기름국물 먹는 쾌감의 정점을 찍습니다. 소주가 계속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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