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근내 닭갈비] 용산 - 한시간 반 짜리 기다림

여러분은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얼마의 웨이팅 시간을 감수할 수 있으신가요? 저는 보통 30분을 마지노 선으로 잡는 것 같습니다. 말은 마지노선이라지만, 사실 30분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 그다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음식만을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닙니다. 솔직히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삼십분 이상 기다려야한다면 저는 그냥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쩌다보니 한시간반을 기다렸습니다. 그 대가로 받은 음식은 닭갈비였습니다. 오늘의 고메투어는 <오근내 닭갈비>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철길, 진짜 기차가 다니더라

용산역에서 용사의 집 방향으로 쭉 나와 걷습니다. 걷다보면 기차가 다니는 철로가 보입니다. 그 철로를 건너서도 조금 더 걷다보면 오늘의 주인공 오근내 닭갈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에는 태풍이, 서울에는 바람이
가게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약간은 외딴 곳에 있는 음식점 앞으로 사람이 가득합니다. 무슨 연예인이라도 뜬 마냥 사람들이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닭갈비입니다. 닭갈비 한번 먹어보겠다고 다들 이 먼길을 와서 대기하는 중입니다.

 

신식 문물, 이제 뭐시여

웨이팅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는지 신세대식 웨이팅 기계가 있습니다. 6시 조금 지난 시간에 찾아갔는데도 저희 앞으로 22팀이 있군요. 평소같으면 그냥 다른 음식점을 찾아 갔을 것인데, 이 날은 사정이 있어 그냥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이 날 남부지방에는 태풍이 왔습니다. 서울에는 다행히 영향이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나름 태풍을 뚫고 한시간반을 기다린 셈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굳이 매장 앞까지 오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예약이 되는 모양입니다. 3팀 전쯤 되면 가게 앞에 슬슬 오시라고 문자가 간다고 합니다. 사실 웨이팅은 그렇게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인데 한국에는 그런 시스템이 적용된 식당이 그리 많지 않죠. 무작정 문앞에서 기웃거리며 기다려야하는 그런 식당들이 다수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훌륭한 문명의 이기를 갖고 있는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웨이팅 기계가 널리널리 퍼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이런게 있는 줄 알았으면 예약걸어놓고 용산역에서 옷이나 구경하다 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하네요

영업시간은 이렇다고 합니다.

 

기본찬들은 적당히 깔립니다
그냥 미역냉국

기본찬이 깔립니다. 가게 내부는 넓지 않습니다. 반은 식탁자리 반은 좌식으로 대략 12테이블 정도의 규모입니다.

닭갈비라는 음식 특성상 회전률이 좋지도 않으니 웨이팅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주 싼 가격은 아니다

닭갈비 2인분에 쫄면사리를 주문했습니다. 다들 쫄면 사리 시키길래 따라시켰습니다.

 

닭갈비 2인분 (24,000원)
생닭을 찍어보자

닭갈비 2인분은 양이 생각보다 꽤 푸짐합니다. 성인 남자 기준 1인분인 것 같습니다. 이따 볶음밥도 먹고 할 거 고려하면 강호동도 충분할 양. 까지는 아니고 아무튼 꽤 많은 양입니다.

 

연기가 장난아님
옷에 냄새 다 밴다구여

식당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봐주시기는 하지만 꾸준히 바닥을 긁어줘야 합니다. 안그러면 양념이 늘어 붙기 때문에..

이게 은근히 신경이 많이 갑니다. 닭갈비가 익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바닥 긁어주면서 소일거리하고 있으면 금방입니다. 나름의 컨텐츠라고 할수있겠습니다.

 

익는데 오래 걸려서 웨이팅도 오래 걸렸구나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옆자리에서는 술판을 벌이고

거의 익은 모습입니다. 

 

쫄면 사리 (2,500원)
드디어 직원 분 입에서 나온 한마디, "드세요"

먹기 직전에 쫄면사리를 투하해주십니다. 볶음에 쫄면이라, 저에게는 꽤 생소한 문법이었습니다. 다들 쫄면사리 시키는게 아니었다면 아마 그냥 라면사리나 시키거나 그냥 사리 없이 먹었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 방문 때도 사리 없이 닭갈비만 먹고도 행복했었거든요.

하지만 쫄면사리가 오근내 닭갈비의 킥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쫄면에서 나오는 전분 덕인지 닭갈비 자체가 진득하고 눅진해집니다.

 

전체적인 닭갈비의 맛은 균형이 잡혀있습니다. 다른 닭갈비집은 종종 너무 달거나 맵게 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은 확실히 그 부분에서 맛을 잘 컨트롤했다는 느낌입니다. 너무 달지도 않고 그닥 맵지도 않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지방의 맛이 닭갈비를 지배하면서 양념으로 적당한 짠맛과 단맛이 밀고 당깁니다. 매콤한 맛은 음식의 정체성을 불어 넣습니다. 다른 닭갈비집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른 점은 사람에 따라서 느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꾸덕한 맛에 있습니다. 확실히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이 저에게도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기존에 생각하는 자극적인 닭갈비 맛보다는 신림에서 먹는 백순대의 맛에 가깝습니다.

 

그냥 이렇게도 먹어보고
저렇게도 먹어봤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

다만 맛의 전체적인 색깔이 무겁다보니 쌈을 곁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또 부추무침이 아주 새큼한데 느끼함에 입에 피로해질때쯤 함께 먹으면 다시 입안을 리셋시킬 수 있습니다. 기본찬에 백김치도 있고, 전체적으로 반찬들의 역할이 이런 쪽으로 설정된 것 같습니다. 

 

알볶음밥 (4,000원)

배는 부르지만, 배가 부르다고 볶음밥을 마다할 수는 없는 점. 게다가 이렇게 좋은 양념에 고기를 먹었으니 밥 안볶을거면 남은 기름이라도 가져가서 집에서 나중에 볶아 먹어야합니다. 괜히 알볶음밥을 시켰는데 그닥 맛 자체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식사를 하면서 앞선 한시간반의 웨이팅은 모두 잊었습니다. 사람 기억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겠죠 원래. 새로운 자극이 있으면 앞선 감정들은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편리한 기억법. 어쨌든 이날의 웨이팅은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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