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히로] 홍대입구/연남동 - 더 쎄게, 더 진하게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0. 12. 17:51
최근에 라멘 매니아들이 모여 있는 오픈 카톡방에 잠입했습니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들어간 것은 아니고, 인스타그램으로 몇몇 라멘 계정들을 팔로우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픈 카톡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호기심에 한번 들어가본 것. 쌓이는 메시지들을 틈틈히 읽다보니 저도 어느새 라멘의 세계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오늘의 약속 장소 주변에 매니아들의 호평을 받는 라멘집 무타히로가 있다는 사실을 접수, 한 번 도전해봤습니다.
홍대 입구에서 2번 출구로 나와 쭉 안쪽으로 들어오다보면 무타히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딱히 간판에 무타히로라고 적혀있지 않기에 그냥 지도 보고 적당히 가다가 라멘파는 곳이 보이면 무타히로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메뉴판입니다. 원래 토리 파이탄을 먹으려 했는데 6시쯤 가니 이미 품절이었습니다. 나머지 메뉴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교카이 라멘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날 따라 진한 것이 먹고 싶었고, 점원분에게 여쭤보니 쇼유보다는 교카이를 매니아 분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하기에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매니아가 정말 매니아 중에서도 매니아라는 사실을..
다찌 7~8석 쯤에 테이블 한 두개 정도 있는 규모의 라멘집입니다. 저는 다찌 좌석에 앉았습니다. 아직 저녁시간도 아니고 해서 한산한 편.
젓가락은 공용통에 담겨 있습니다. 스프 퍼먹을 숟가락은 이따 라멘과 함께 주십니다.
교카이 라멘이 나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진합니다. 고명으로 챠슈와 타마고 김이 보입니다. 김 밑에는 죽순이 가려져 있습니다. 국물 위로 하얗게 서린 하얀 덩어리들은 세아부라입니다. 그니까 돼지비계를 갈아 올린 것입니다. 국물의 진한 정도를 상당히 업 시켜 줄 듯 합니다.
우선은 국물을 한 숟갈 떠봤습니다. 첫 인상은 "와! 맛있다"였습니다. 강하고 진하게 들어오는 국물맛입니다. 직관적으로 맛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합니다. 국물 농도는 아주 짙습니다. 지방이 많은 탓인지 액체와 고체 사이의 농도를 가진 스프입니다. 사실상 간이 된 지방 덩어리를 그래도 삼킨다는 느낌입니다. 그말인즉 맛이 없을 수 없다는 말.
면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단단한 식감의 면을 선호하는데 이정도면 제 입에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국물과 잘 어우러집니다.
멘마(죽순)도 통통해서 쫄깃하고 씹는 식감이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기 고명을 먹었을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고기를 이로 씹자마자 그 속안에 숨겨져 있던 어마어마한 염도가 제 입안을 공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뭐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고기를 조심스레 물어보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챠슈가 겁나 짰던 것입니다.(지금 인스타를 찾아보니 다른 분들 사진 속의 차슈와 제 챠슈가 다르게 생겼는데 어쩌면 그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뱉을 수는 없으니 계속 씹어 삼켰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제 입안 속 미각세포들은 염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냥 풍부하게만 느껴졌던 스프마저도 짜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각 밸런스가 무너지자 이제 진한 맛이 되려 느끼한 맛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왠만해선 라멘 스프를 남기지 않는데 이 날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염도여서 조금 남겼습니다. 이미 강한 맛에 더 강함을 더하고 이미 진한 맛에 더 진함을 더한 맛입니다. 조금은 덜 짜도, 덜 진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아 혹시 이 라멘은 진성 매니아들만을 위한 라멘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픈채팅방을 열어 무타히로 교카이 라멘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자, 아니나 다를까 매니아들 사이에서 조차도 그 강력함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는 라멘이었습니다. 라멘 탐방의 첫 타자로 끝판왕을 만난 셈입니다. 아 물론 제가 그닥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약속장소로 가다보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면서 느글느글해졌습니다. 한 두시간 후 그 기운은 잦아들었지만 라멘이 강렬했던 것 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 라멘을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냐?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또 은근히 생각납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진한 라멘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비록 그 좌표가 극단에 있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가 있는 라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엔 꼭 파이탄을 먹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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