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집, 종각 - 의외성 가득한 족발집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1. 6. 08:30
연말을 맞아 간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서울 경기 각지에 흩어져 살다보니 약속 장소 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랜 토론과 숙의 끝에 민주주의적으로 합의해낸 약속 장소는 광화문이었습니다. 멤버 중에 광화문 잘 아는 형이 있으니 믿고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1차로 낙점된 식당은 바로 오목집 광화문점. 하지만 알고 보니 오목집 광화문점은 광화문이 아닌 종각에 위치하고 있었던 반전 스토리.
광화문 역에서 내릴 뻔 했으나, 저와 비슷한 착오를 한 동기가 이미 카톡을 통해 언질을 해주어서 종각역으로 직행했습니다.
오목집은 광화문 우측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굳이 광화문에서 가려면 갈 수야 있겠지만 종각역이 훨씬 가까우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런데 오목집 광화문점은 왜 광화문에 없는 걸까요.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주는 깜짝 서프라이즈 이벤트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착해서 테이블에 앉았을때 억지스런 근황토크—여어 잘 지냈어— 대신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대화 화제—광화문에서 오목집 광화문점을 찾고 있었지 뭐야 하하호호—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이기에 코리안타임에 맞춰 약간 늦게 도착했습니다. 탈한국적 마인드를 가진 동기들은 미리 도착해서 꽃게탕을 끓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오목집에서는 족발을 시키면 꽃게탕이 서비스로 나온다고 합니다. 아마 족발값에 암묵적으로 포함된 꽃게탕이겠지만 그래도 서비스라고 하니 은근히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처음에는 맹탕이길래 아주 오랫동안 팔팔 끓여주기로 했습니다.
일찍 도착한 네 명 중 두 명이 부상 중이라 술은 맥주로 가볍게 달리기로 했습니다. 달린다기보다는 걷기로 했다는게 더 적확한 표현일수도 있겠습니다. 몸살감기와 장염 환자는 술을 자제하고 건강한 저와 한 명은 맥주를 살살살 마시기 시작.
연말이라 그런지 가게는 사람들로 꽉차있습니다. 거의 시장통 분위기. 코리안 타임을 칼같이 지키는 친구들이 모두 도착하면 추가 주문을 추후에 더 하기로 하고 우선은 족발 중 자리만 하나 시켜서 먹기로 했습니다.
두툼하게 썰려나온 족발이 나왔습니다. 별 기대 없었는데 생각보다 떼깔도 곱고 그만큼 사진도 잘나왔습니다. 썸네일로 써야겠다
현란한 젓가락질 솜씨로 족발을 하나 낚아채 사진촬영. 윤기가 좌르르 흐릅니다. 족발이 상당히 두께감 있게 썰렸습니다. 그말인즉 고기의 부드러움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실제로 고기 질 자체는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지방부위도 야들야들하고 살코기도 퍽퍽하지 않게 잘 조리되었습니다. 또 오목집의 족발은 꽤 온도감이 있는 채로 서빙됩니다. 족발이 뜨듯하게 나올때 가질 수 있는 최적의 온도였습니다. 이보다 뜨거우면 살코기에서 지방층이 분리되기가 쉽고 이것보다 차가우면 두껍게 썰린 족발의 식감이 질겅이게 되겠지요.
족발의 양념도 적절히 배어있습니다. 겉에서부터 느껴지지는 않지만 지방층 내부에 깊게 배어있는 짭쪼름한 족발의 간장양념맛.
쌈채소도 있고 족발도 있고 부추도 있고 하니까 한 번 안 싸먹을 수 없겠다 싶어서 쌈도 싸서 먹어보았습니다.
물통에 양배추 소스가 들어있습니다. 오목집의 두번째 서프라이즈 이벤트. 이곳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물 색과 물통에 들은 양배추 소스의 색이 비슷해서 자칫하면 헷갈리기 쉽습니다. 특히 늦게 온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물통에 들은게 물인 줄 알고 따라먹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 혹시 그런 실수를 한다면 또 테이블에 즐거운 화제 거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손님들의 화제거리를 위해 재미있는 장치들을 연달아 설치해 놓은 오목집의 센스.
과거의 제가 이런 사진을 찍어놓은 것을 보니 양배추 소스를 족발과 함께 찍어먹는 모습을 블로그에 올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 점 올려 먹었음.
그렇게 족발 중 짜리를 다 먹고 나니, 드디어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추가 주문을 위해 다시 긴 토론의 시간을 가진 후 직원을 불러 매운 족발을 주문하려 했으나, 오늘 족발이 모조리 떨어져서 이제 사이드 메뉴 밖에 주문이 안된다고 합니다. 이때 시각은 겨우 7시 30분. 세번째 서프라이즈에 깜짝 놀라 2차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습니다. 족발에 설레하던 지각생들은 족발 없이 꽃게탕만 먹었다는 후문.
하지만 오목집의 진정한 진가는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오목집은 바로 아이스크림 맛집이었던 것. 기대없이 뽑아 먹은 아이스크림인데 어지간히 사먹은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족발 매진으로 허해졌던 마음을 아이스크림으로 다스렸습니다.
몇 번의 서프라이즈가 있긴 했지만, 오목집의 족발과 아이스크림만은 훌륭했습니다. 바쁘지 않은 한가할 시기에 다시한번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음직할 듯 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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