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버거, 롯데리아 - 빵 맛이 너무 강한 정체불명 버거

전역하던 날,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며 롯데리아를 먹었습니다. 그 시간에 연 터미널 주변 식당이 롯데리아 밖에 없었거든요. 혼자였다면 그냥 굶고 서울로 갔을 법도 한데 알동기와 뜨거운 이별을 해야하는지라 먹었습니다. 2년동안 함께 고생했는데 그래도 밥 한끼는 먹으며 회포를 풀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때 먹은 유러피안 치즈버거는 맛있었습니다. 전역버프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날 이후로 제 발로 롯데리아를 찾은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아 중간에 비주류병 도져서 한번 갔던 것 같기도 합니다. 왠지 인스타에 올리고 싶었거든요.(대충 사회에 만연한 롯데리아 혐오를 거부하겠다는 내용) 아무튼 그때를 제외하면 맥도날드와 버거킹과 맘스터치와 KFC가 도처에 깔린 한국에서 굳이 롯데리아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오늘 카페 가던 길에 롯데리아를 봤고,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무작정 들어가 점심을 때우고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버거는 폴더버거가 될 예정입니다. 출시 전부터 "버거 접습니다" 마케팅을 펼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신제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가 너무 뻔해서 그닥 호감가지 않는 마케팅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마케팅이 유행이라니까 아재개그 좋아하는 부장님이 손수 아이디어를 내고 신나서 팀에 제안하는데, 팀원 입장에서는 그닥 신박하지도 않고 뭔가 맘에도 안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고, 사실 떠올리기도 귀찮고, 떠오른다 한들 총대메고 책임지는 것 같아 말하기 무섭고, 괜히 혼자 별로라고 했다가 부장님한테 찍히면 피곤해질 것 같으니까 그냥 좋다고 박수치면서 진행시킨 듯한 느낌

아무튼 그와 별개로 타코를 연상시키는 모양새 때문에 타코 매니아로서 한번쯤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롯데리아 들린 김에 주문해 본 것입니다.  

 

오랜만에 와서 깜짝 놀란 사실1: 롯데리아 내부 인테리어 엄청 깔끔하고 모던하게 잘 해놓음

오랜만에 와서 깜짝 놀란 사실2: 인테리어는 깨끗한데 정작 테이블은 끈적하고, 음료 수거대 주변에 초파리 한 부대 날아다님

 

폴더버거 세트 (7,500원)

폴더버거는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주문했습니다.

 

비프와 핫치킨 중에서 고를 수 있는데 저는 비프를 먹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햄버거는 갓 만들었는지 겁나 뜨겁습니다. 언젠가부터 롯데리아는 햄버거 바로 만들어서 주는것 같더라구요

 

아무튼 버거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넓직한 빵에 양파, 피망, 치즈, 고기를 넣고 반으로 접어서 냅니다. 뜨거워서 들고 있기 힘들길래 일단 감자부터 먹기로 했습니다.

 

뜨끈한 버거와 달리 감자는 미지근합니다. 하나가 뜨거우면 하나는 차가워야하는 것이 인지상정. 등가교환의 법칙인 것입니다.

아무튼 미지근한 온도감에도 고소한 튀김냄새가 아주 향긋합니다. 따끈했으면 맥도날드 감튀보다 맛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격젹으로 버거를 먹습니다. 앞서 타코를 닮은 버거라고 했는데, 사실 반달모양으로 접어먹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타코와 전혀 비슷한 점이 없습니다. 내용물도 내용물이지만 우선 외피부터 아주 다릅니다. 얇은 토르티야를 쓰는 타코와 달리 폴더버거는 그냥 두꺼운 빵을 씁니다. 오히려 모양은 그리스 빵인 피타와 더 비슷한데, 먹어보면 그냥 햄버거 번을 넓직하게 펴놓은 맛입니다. 

생김새로 좀더 닮은 음식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한때 타코벨에서 판매하던 찰루파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튀긴 토르티야(그것도 두꺼운 스타일의 특이한 토르티야)에 소고기, 사워크림, 치즈, 토마토, 상추 등을 넣어 팔던 음식인데, 사실 폴더버거랑 뭐 엄청 관련이 있지는 않고 그냥 생각나서 말해봤습니다. 제가 되게 좋아하던 메뉴인데 단종돼서 이제는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팔아줬음 좋겠다...아무튼 롯데리아 폴더버거랑 맛이 비슷하지는 않습니다.

 

먹어보니 맛은 오묘하고 애매합니다. 조그만 사이즈의 인스턴트 피자를 전자렌지에 돌린다음 자르지 않고 반으로 접어 먹으면 이런 맛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이 오묘한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짚어볼 수 있겠는데, 우선 빵의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빵이 두꺼워서 빵맛이 속재료의 맛을 모조리 뒤덮습니다. 특히 가장자리부분에서 그런 경향이 심합니다. 밸런스가 맞지 않다보니 재료 아낀 피자빵을 먹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비슷한 견지에서 하나 더 찾자면, 고기패티 맛이 너무 약합니다. 앞서말한 찰루파도 그렇고, 타코도 그렇고 이렇게 반 접어 쌈처럼 먹는 음식의 공통점은 고기의 존재감이 외피보다 훨씬 강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단순히 반 접어 먹는 음식만 통용되는 논리는 아닙니다. 상추에 싸먹는 고기쌈도 그렇고, 만두도 그렇고, 케밥도 그렇고, 호빵도 그렇고, 호떡도 그렇습니다. 뭐든간에 싸먹는 음식의 외피는 내부 음식의 맛을 보조해주거나 보완해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싸먹는 형태의 음식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데, 폴더버거처럼 외피 맛이 지나치게 두터워 내부의 맛을 모두 가려버리는 식의 음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폴더버거는 외피로 두터운 빵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속재료의 맛이 빵맛을 뚫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습니다. 고기패티나 소스의 맛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밀가루 사이에 매몰되어있습니다. 

다 제쳐놓고라도 폴더 ‘버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햄버거를 표방하고 나온 음식입니다. 햄버거란 음식의 주연은 누가 뭐래도 고기패티입니다. 고기맛 안 나는 햄버거는 비건버거가 아니고서야 햄버거라 할수 없습니다. 폴더버거에서 고기 맛은 눈을 감고 꼭꼭씹어야만 간신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고기 양을 늘리기 어렵다면 간이라도 조금 더 강하게 가져갔으면 더 좋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폴더브레드 정도로 이름을 개명하는 것도 좋은 생각일 수 있겠습니다.

내부에 정확히 어떤 소스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소스의 조합도 그닥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두꺼운 빵을 쓸것이라면 좀 쨍하고 강렬한 소스를 썼어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유독 양파를 많이 넣었던데 그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암튼 담엔 그냥 딴거먹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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