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필레 오 피쉬, 맥도날드 - 돌아온 휘시버거와 나의 추억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집 앞으로 맥도날드 쿠폰 전단이 오곤 했다. 쿠폰 종류는 여러가지 였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휘시버거 쿠폰이었다. 아마 가격이 가장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단에서 휘시버거 쿠폰을 오려내고 엄마에게 맥도날드 원정 허락을 구했다. 집에서 맥도날드까지는 걸어서 15분거리. 당시의 짧은 다리로는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엄마의 허락을 받고 나면 나는 혼자 맥도날드로 걸어가 휘시버거를 사먹곤 했다.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그 먼 원정길은 어린 내게는 하나의 모험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모험 끝의 결실은 바로 휘시버거였다. 맥도날드에 대한 나의 선호를 만든 것이 바로 휘시버거다. 어릴 적 혼자 걸어가서 먹던 그 짜릿한 맛이 아직도 날 맥도날드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휘시버거는 어느 순간 단종됐다. 맥도날드로 가는 그 원정길이 더이상 무섭지 않게 된 뒤로 나는 휘시버거를 먹은 일이 없다. 어릴 적 그런 햄버거가 있었다는 사실만 종종 떠올릴 뿐 단종됐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거가 돌아왔다는 광고를 봤다. 사라진 줄도 몰랐던 버거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쿠폰 전단지를 받아들었을 때처럼 나는 문을 열고 자연스레 맥도날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적 맥도날드를 향해 떠나던 모험의 기억이 어렴풋이 돌아왔다. 

 

어릴적 먹던 휘시버거의 생김새도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포장이 한결 세련되어졌다는 건 알 수 있다. (더블 필레 오 피쉬 세트, 6,000원)
 나의 건강 상태를 배려해준 것일까? 오늘 감자튀김은 저염식이었다.
걸리적거리는 '뚜껑이'는 가차 없이 제거해버리는 것이 좋다.
더블 휠레 오 피쉬. 이름이 한결 세련되어졌다. 사대주의니 뭐니 해도 결국 영어이름이 있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결국 미국이 패권국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럼에도 '휘시'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추억과 감성이 사라진 것은 조금 아쉽다. 
버거는 아담한 편이다. 원래 휘시버거도 그랬다.
소스가 조금 모자랐다. 이것도 나의 건강 상태를 배려하는 것일까.
먹다보니 소스가 점점 더 보인다. 
알고보니 반대편은 소스가 흘러 넘친다. 소스 세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소스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빈곤지역에 긴급 케찹소스 지원을 실시했다. 응급처치는 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케찹은 타르타르 소스에 비해 너무 새큼하다.
마지막으로 소스 풍족 지역을 먹어 마무리했다. 훨씬 풍부한 맛을 가졌고, 밸런스도 더 좋았다. 어차피 결국엔 평등하게 다 먹힐 버거인데 처음부터 균등한 소스의 분배가 이루어졌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마지막으로 휘시버거를 먹은 것이 너무 예전이라, 이 맛이 그때 그 맛이 맞는지 금세 확신할 수는 없었다. 수십년만에 만난 이산가족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대신 어렴풋이 떠오르는 몇 가지 인상들을 단서 삼았다.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튀김패티와 녹다만 치즈의 오묘한 조합, 양이 모자라지만 새큼해서 입맛을 당기는 소스, 퍼석하지만 따끈한 생선살 패티 같은 특징들이 불현듯 휘시버거의 추억을 불러오며 "그래요, 이 버거가 그때 그 버거가 맞습니다", 하고 확신을 갖게 한다. 어릴적과 비교하면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때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더듬을 수 있었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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