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쿼터파운더 치즈, 맥도날드 - 경제논리 앞의 빅맥
- 비정기 간행물/패스트푸드 기행
- 2019. 10. 18. 22:37
얼마 전 맥올데이에서 빅맥이 빠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신메뉴인 슈슈버거. 일종의 세대 교체 같아 보인다. 오랜기간 대표 메뉴였던 빅맥을 대신해 새로운 버거를 마케팅 전면에 등장시켰으니까. 하지만 세대교체라는 말이 여기에 적확한 표현일까. 우선 세대교체란 힘이 빠지거나, 곧 빠질 예정인 전 세대가 존재할 때 성립할 수 있다. 지금 이 케이스에 적용하면 빅맥이 그 노쇠해가는 전 세대다.
빅맥은 예전에도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맥도날드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 빅맥을 찾는 객은 여전히 많다. 세대 교체의 대상이 될 알량한 메뉴라기 보다는 길게 함께할 클래식이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지만 이럴때 쓰라고 있는 표현이니까 한 번 쓰자면, 클래스는 영원하다. 일개 소비자 입장으로 빅맥 판매량 추이나 마진율을 알 순 없지만, 빅맥의 힘이 빠질 일은 없다.
어차피 빅맥은 매니아들의 버거니 가격을 올려도 판매량엔 상관없단 마인드는 아니었을까. 빅맥세트가 맥올데이에서 빠짐으로 가격이 15% 가량 증가했다. 빅맥은 오랫동안 충성심 높은 팬들을 형성해왔다. 그 콘크리트 수요층은 가격에 상관없이 빅맥을 사먹는다. 맥올데이로 할인하면 할인해서 좋지만, 할인 안한다고 슈슈버거를 먹지 않는다. 상시 할인 대상에서 빼버리기 딱 좋다. 쿠폰으로 미끼를 던질 필요도 없다. 손해보는 건 빅맥 매니아들 뿐이다.
물론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빅맥 맥올데이에 계속 넣어주세요"는 땡깡이다. 맥도날드 입장에서 빅맥보다 슈슈버거가 더 수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걸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옳다. 기업은 시장논리로 움직이는 것이 순리다. 나는 다만 내 베스트 메뉴가 이렇게 추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깝다.
빅맥은 결국 경제 논리에 의해 고꾸라졌다. 같은 논리로 내 사랑 치킨치즈머핀도, 맥윙도 사라졌다. (얼마 전엔 메가맥도 사라졌다) 물론 빅맥이 단종되기까지야 하겠냐만은, 그래도 좋아하는 것이 시대의 뒤안길로 흘러가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은 씁슬하다. 빅맥의 열렬한 팬이자 동시에 힘없는 소비자로서 여기에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왠지 오늘은 빅맥이 먹고 싶지 않아서 더블쿼터파운더 치즈 버거를 주문했다. 쿠폰을 써서 최대한 맥도날드의 마진율를 낮추는 방식으로 소소하게 소비자 권력을 행사했다. 물론 의미 없는 거 나도 안다.
쿠폰에 감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차피 버거가 든든해서 상관은 없다. 대신 미안했는지 콜라는 라지로 준다. 사실, 감자가 없으니 절대적인 음식량이 줄어들어 일반 세트메뉴보다 콜라가 덜 필요하다. 즉 라지 사이즈 콜라를 시킨다는 것은 쓸모없는 여분을 초과구매하는 셈이된다. 쿠폰으로 주문하면 메뉴 변경이 불가하다. 힘 없는 소비자는 주는 대로 먹자. 이것이 맥도날드가 경제논리에 의거해 설정한 최적의 메뉴 구성이다.
기업은 시장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바꿔 말하면 기업은 소비자를 위한 메뉴보다는, 마진이 조금이라도 더 남고 수익이 조금이라도 더 높을 것 같은, 그러니까 돈이 더 될 것 같은 메뉴를 판다. 경제 논리에 따라 이기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의 행동의 대가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이게 싫으면 자본주의 사회를 떠나면 된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자신의 수익을 위해 행동할때 선하다.고 다들 말 안하면 공산당 취급 받더라.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업이 남양처럼 크게 똥볼이라도 찼더라면 불매운동 정도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맥도날드가 빅맥을 맥올데이 메뉴에서 제외한 사건이라면? 교묘한 메뉴 설정으로 소비자들에게 겨우 백원 이백원의 매출을 더 올린 정도라면? 겨우 그 정도로 소비자들은 움직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동안 소비자들의 작은 손해는 점점 쌓인다. 그 쌓인 손해를 먹고 배를 크게 불리는 것은 기업이다. 무기력한 소비자들은 가랑비 맞듯 젖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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