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 크루아상, 버거킹 - 안타까운 아침의 맛
- 비정기 간행물/패스트푸드 기행
- 2019. 11. 5. 15:00
안타까웠다. 충분히 더 맛있을 수 있었지만 디테일의 부재로 맛이 없었다. 버거킹의 아침 메뉴 햄 크루아상의 이야기다.
편의점에서도 사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굳이 패스트푸드 점까지 와서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전하게 조리가 끝난 음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냉장칸에서 차갑게 식고 있는 편의점의 샌드위치의 조리는 전자렌지에서 이루어진다.—전자렌지가 나쁜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샌드위치를 조리하기에 썩 어울리는 도구는 아니다—그래서 편의점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샌드위치는 데우지 않은 채 그대로 먹는 콜드 샌드위치다.
우선 샌드위치라는 음식의 물성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겠다. 샌드위치란 빵 사이에 채소와 고기를 끼워 함께 먹는 음식이다. 다양한 종류의 재료들이 층을 이루어 하나의 완성품을 구성한다. 이때 그 다양한 재료들의 적합한 조리 방법 혹은 데움의 방식은 각각 다르다. 완제품을 전자렌지에 대충 때려박고 돌렸을 때 제대로 된 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대로 조리하려면 재료들을 해체해 각각 따로 알맞게 조리한 후 다시 조립해야한다. 편의점에서 실행하기에 딱히 좋은 방식은 아니다. 알바생에게 혼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패스트 푸드점에서라면 어떨까? 세분화된 조리가 충분히 가능하다. 빵을 데우고, 계란을 익히고, 고기를 굽는 일련의 과정이 각각 이루어 질 수 있는 주방이 존재한다. 샌드위치의 재료를 각각 조리한 후 조립할 수 있는 환경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편의점에서 조리하는 샌드위치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문제의 샌드위치를 속속 들이 살펴보자. 크루아상을 반 자른 후 그 사이에 햄, 계란, 치즈를 끼웠다. 안전한 조합이다. 이미 검증받은 재료들로 샌드위치를 구성했다. 어지간해서 맛이 없기 힘들다. 실제로 맛의 논점에서는 딱히 흠잡을 만한 곳이 없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온도에 있었다. 언제 데운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샌드위치는 차가움과 미지근함 사이 그 어딘가에 좌표가 찍혀있다. 차가움에 좀 더 가까웠다. 잠깐이라도 크루아상을 조리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물론 콜드 샌드위치라는 장르도 있다. 불을 쓰지 않고 신선한 채소 맛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샌드위치에는 그 어떤 신선한 재료도 들어가지 않는다. 굳이 찬 온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 샌드위치의 온도를 차갑게 설정했다고 생각해보자. 이번엔 혼자 뜨듯한 계란이 발목을 잡는다. 빵도 치즈도 햄도 차가운 가운데 오직 계란만이 방금 조리되어 홀로 뜨듯하다. 온도의 대비를 노렸다고 하기에는 조화롭지가 않다. 콜드 샌드위치에 방금 익힌 계란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 슬펐던 것은 커피의 맛이었다. 아무리 싸구려 커피라지만 커피 비슷한 흉내는 내야하지 않을까. 맛 없는 단맛이 커피 전체를 지배한다. 색은 까맣고 커피향이 나는 듯도 한데 커피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맛이다. 비슷한 가격대와 위상의 맥카페가 얼마나 좋은 커피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해쉬브라운은 훌륭하다. 갓 튀겨내 따듯하다. 크루아상이 본받아야할 온도다. 겉은 잘 튀겨져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감자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이 짠맛과 잘 어우러진다. 맛있게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는 쌉싸름한 커피가 땡긴다. 훌륭한 튀김이기에 더욱 커피에 아쉬움이 남았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사이드 메뉴에 대한 단상이다. 나는 주로 맥도날드를 다닌다. 버거킹이나 롯데리아를 가는 날은 일종의 외도다. 간만에 다른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할 때마다 버거는 차치하더라도 사이드 메뉴에서 항상 감탄한다. 사이드 메뉴가 생각나 다시 버거킹을 방문하고 롯데리아를 간다—사실 그래도 롯데리아는 안간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버거킹과 롯데리아의 사이드메뉴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맥도날드의 사이드메뉴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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