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생라멘, 왕십리역 - 투박함의 매력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0. 21. 00:04
왕십리를 떠나기 전, 그간 제가 사랑했던 맛집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라멘입니다. 학교 앞 상권에 일락을 필두로 몇몇 라멘 집들이 있지만 저는 라멘이 땡길때면 항상 이 곳을 찾았습니다. 비록 성동구청 앞까지 10~15분가량 더 걸어나와야 했지만 그래도 좋은 한 끼를 위해서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라멘 1세대로도 잘 알려져 있는 성화생라멘에서 간만에 점심을 먹었습니다.
왕십리역에서 성동구청 방면으로 나와 조금 걸어야 합니다. 대로변에 있기에 금새 찾을 수 있습니다.
성화생라멘은 라멘 1세대로써 매니아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라멘 노포 호프켄의 한국 분점을 신도림에서 운영하시던 사장님이 장사를 접고 자리를 옮긴 곳이 바로 성화생라멘입니다. 가게 외부에도 일본어로 된 라멘 관련 프린트들이 잔뜩 붙어 있습니다. 호프켄에서 비법을 전수받았다고는 하는데, 저는 호프켄을 가보지 못해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해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몇 년 째 꾸준히 6000원의 가격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니 주머니 사정이 항상 좋지 않은 대학생들에게는 좋은 선택지입니다. 진하게 먹고 싶다면 라멘 주문시에 진하게 내달라고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한국 사람 입맛에 맞춘 마일드한 라멘이 나온다고 합니다. 저는 항상 진하게 먹어 왔기에 얼마나 마일드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원래 중장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운영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가니 젊은 청년이 홀로 주방에서 손님을 받고 있습니다. 알바생인지 아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게 분위기는 전혀 라멘집스럽지 않고 수더분합니다. 흡사 분식점 같기도 합니다. 백종원 센세가 가라사대, 음식의 맛 70%는 분위기가 좌우한다고 했는데.. 이 집에도 통용되는 말일지 궁금합니다.
라멘을 받아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국물부터 맛봅니다. 첫 인상은 '앗 뜨거 슈바'였습니다. 보통 라멘집에서는 국물 온도를 바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내오는 것이 보통인데 이 곳은 그런 것 없이 아주 뜨겁습니다. 별 생각없이 먹었다가는 혀 데일 정도의 높은 온도 입니다. 사실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제가 알아서 조심했어야하는데 너무 오랜만에 온지라 깜빡하고 그냥 먹었다가 봉변을 당했습니다. 혹시라도 찾아가실 분은 참고하시길.
어쨌든, 뜨거움을 뚫고 맛본 국물에서는 돼지뼈 우린 맛이 쨍하게 납니다. 강렬한 감칠맛이 훅 들어옵니다. 동시에 기름기가 질펀하게 느껴집니다. 굵직한 돼지 육수의 맛입니다. 투박하지만 맛이 분명합니다. 맛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갔던 친구는 다른 라멘 집에 비해 투박하고 직선적인 이 곳의 돼지 육수 맛을 이 집의 최고 장점으로 뽑았습니다.
반면, 저는 그 포인트에서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투박하고 직선적이라는 말은 곧 단조로움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물론 그냥 등치 관계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정도 근사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취향에 이 라멘의 스프는 다소 단조롭게 느껴졌습니다. 돼지뼈 육수를 베이스로 한 라멘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풍부한 지방의 맛, 혹은 복합적인 맛의 레이어를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제 의견입니다. 물론 돼지 육수에서 돼지맛만 잘 나면 되는거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국물만으로는 라멘 한 그릇을 끝까지 매력적으로 끌고 나갈 동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다시말해 금새 질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국물로 느껴졌습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건 오직 제 취향에 의거한 코멘트입니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이곳의 육수가 최고일 수 있습니다.
또 특기할 만한 점은 삶은 계란입니다. 보통 반숙 타마고가 나오는 데 반해 성화생라멘은 익힌 계란을 줍니다. 역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습니다. 이 곳 라멘의 투박한 매력과 특성을 고려할 때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차슈는 큼지막하고 두께가 있어 먹을만 합니다.
다만 면 역시 호불호의 대상일 듯 하면서도 또 동시에 이 곳 라멘의 투박한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보통 돈코츠에 쓰이는 가느다란 세면 대신 중면이 들어가는데, 기름기있는 국물과 함께하는 미끈한 식감으로보나 노란 빛의 색감으로 보다 마치 중국집의 면을 연상케합니다. 짬뽕이나 짜장면에서 볼 수 있을만한 면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게는 다소 아쉬운 포인트였지만, 면 그 자체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무리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직선적인 스프에는 세면보다는 이런 중면이 어울리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열무김치가 나옵니다. 저는 원래 밑반찬 잘 안먹어서 패스
야끼만두입니다. 특별한 만두는 아니지만 밑바닥을 바삭하게 구워냈습니다. 잔치를 벌이고 싶은 날이라면 좋은 선택이 될 듯합니다.
호불호가 갈릴 스프라고 했지만 또 먹다보니 그냥 밥까지 말아먹게 됐습니다. 머리 속으로는 복잡하게 맛을 따졌지만 어쩌면 제 혀는 계속 이 국물맛을 당겨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밥은 무료 리필이 가능하니 얼마든 먹을 수 있습니다. 6,000원의 가격에 이정도 가성비라면 종종 들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1세대 라멘집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역사가 깊은 집이니 체험의 의미로도 충분히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국물은 물론, 인테리어부터 가격 그리고 심지어 담배 판매까지... 그야말로 투박하고 거칠은 마이웨이 스타일의 라멘집입니다. 아까 말은 아쉽다고 아쉽다고 했지만 그래도 기어코 또 찾게 되는 것을 보면 저도 또한 이 집의 투박한 매력에 포섭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왕십리를 떠나면 예전처럼 자주 들르지는 못하겠지만, 제 인생 불특정한 어느 포인트 쯤에 문득 생각날 것만 같은 라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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