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올 치킨, 사근동 - 튀김 + 닭칼국수 = 괴식?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0. 22. 14:09
혹시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괴식이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감자칩을 마요네즈에 찍어먹는다거나(생각보다 맛있음), 버터 팝콘과 초콜릿을 같이 먹는다던가(상당히 맛있음), 우유에 밥을 만다던가(극혐) 하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몇몇 괴식들은 그야말로 말그대로 괴물 같은 음식이지만 또 몇몇 음식들은 의외의 궁합을 자랑하며 사람들의 보편적인 취향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파닭 같은 경우는 처음 나왔을 때는 분명 괴식 취급을 받았겠지만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조합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 넘치는 창의성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남들보다 긴 괴식 리스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는 분명 보편적으로 먹힐 수 있으며, 맛의 논리적인 측면을 위배하지도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튀김을 진한 국물에 살짝 찍먹하는 것입니다. 딱딱한 튀김옷이 따뜻한 국물에 담궈지면서 촉촉해지고 그 사이로 국물이 삭 배어들어 튀김을 깨물때 맛볼 수 있는 육수의 양과 풍미를 한층 상승시켜줍니다. 물론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곤 합니다. 하지만 시도해본 후에는 좌우로 가로짓던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게 됩니다.
이 레시피에 확신을 얻게 된 식당이 바로 다시올 치킨입니다. 기숙사 살던 시절 주구장창 다니던 곳입니다. 맛있고 저렴한 닭칼국수와 치킨으로 유명합니다. 가끔씩 이 집의 닭칼국수가 땡기곤 했는데, 오늘 마침 타이밍이 맞아 동기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한양대 기숙사 방면으로 나오면 사근동이라는 작은 동네에 갖은 음식점들이 몰려있습니다. 주변에 기숙사는 물론 자취생들도 많아 항상 저렴한 음식의 수요가 있는 곳입니다. 자연스레 학교 학생들만의 작은 맛집들도 생겼겠지요. 다시올 치킨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한양대생들—특히 기숙사 사는—의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식사류는 가격이 조금씩 오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렴한 수준에서 방어되고 있습니다. 메뉴가 이렇게 많은데, 그렇게 자주오면서도 항상 시키는 것은 똑같습니다. 제 초이스는 언제나 닭칼국수 그리고 순살 후라이드입니다.
내부는 그닥 특별할 것 없는 학교 앞 식당입니다. 보통의 분식점보다는 조금 더 깔끔한 편.
치킨을 시켜서 무와 양념, 소금이 나왔고, 기본으로 깔리는 김치는 배추와 깍두기 두 종류입니다. 김치 맛은 쏘쏘합니다.
닭칼국수 등판입니다. 기름이 동동 떠다닙니다. 닭고기 육수가 진합니다. 항상 온도가 높게 설정되어 나오기에 후후 불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어차피 뜨거워서 면은 건드릴 생각도 못하고 한참을 국물만 홀짝입니다. 영혼이 치유되는 기분이 듭니다. 1학년때부터 시험기간이면 항상 공부하다가 들르던 곳이었습니다. 추억들이 가득 들어있는 맛입니다. 국물 맛이 이렇게 진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도가 식을 때까지 계속 국물만 떠 먹었습니다.
칼국수를 시키면 옆에 마늘과 다데기 그리고 김을 좀 주십니다. 취향껏 넣어먹으면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편입니다. 이미 간이 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김은 좀 넣어주는 게 좋습니다. 감칠맛 상승의 효과가 있겠습니다. 저는 반정도 먹고 넣었습니다.
먹다보니 치킨이 나왔습니다. 후라이드만 시켰는데 주문 미스로 반반이 나왔습니다. 가격은 순살 값만 받으셨습니다. 아무튼 이곳 치킨이 아주 괜찮습니다. 바삭한 튀김옷과 속의 살코기까지 적절하게 간이 되어 있습니다. 짭조름한 맛에 절로 맥주가 생각납니다.
서두에서 말했던 튀김 찍먹입니다. 튀김을 집어 칼국수 국물에 푹 찍습니다. 이때 포인트는 너무 오래 담구면 안된다는 것. 튀김옷이 국물에 절어 흐물해지는 상태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3초 이내로 푹 담갔다 빼서 튀김옷의 다소 딱딱한 포인트들을 뭉툭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3초면 충분히 튀김옷 사이로 국물이 배어듭니다. 그리고 면과 함께 후룩 입으로 밀어 넣으면, 폭신해진 튀김과 면이 끌고 들어오는 국물 그리고 부드러운 면이 한데 섞이며 전체적인 맛의 경험이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결국 닭—육수—과 닭—튀김—의 만남이기에 맛 자체의 층위에는 크게 변동이 없지만, 둘의 조화는 튀김 자체에 더 큰 매력을 불어넣습니다. 튀김에 모자랄 수 있는 수분을 육수가 보충하고 그와 동시에 튀김옷을 녹여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거기에 튀김과 반대의 식감을 가진 면이 대비를 이루며 먹는 재미를 더합니다.
사실상 튀김우동과 같은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뜨거운 우동 국물에 튀김을 찍어먹는 이유도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들과 일맥상통합니다. 튀김우동에는 반감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치킨을 국물에 찍어먹는 것에는 질색팔색하는 모습을 보면, 결국 음식이라는 것은, 맛의 논리보다는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 더 크게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 또한 앞서 제가 다시올치킨의 국물에서 특별함을 느끼는 이유로 추억을 지목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에 더더욱 힘이 실립니다. 결국 괴식이라는 것도 음식 그 자체의 맛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저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달린 것일 수도 있겠지요.
사실 다시올 치킨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메뉴는 양념치킨입니다. 매운맛이 바짝 들어가 있는데 달큰한 맛과 밸런스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양념소스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사근동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요. 왕십리야 종종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근동은 정말 확신할 수 없네요.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오늘의 식사가 조금은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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