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블 에그' 전문가 3주 코스] 9일차, 스크램블 에그 온 더 불닭볶음면

한국인이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은, 주변 한국인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조사해보았을 때, 대체로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조사의 대상이 되었던 주변 한국인 중 한 명인 나의 경우에도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의 매운 음식에 대한 선호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군대를 다녀온 후 매운 음식을 섭취하는 일종의 루틴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루틴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주 간단한데,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폭발할 때 쯤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군 시절 야간 근무가 끝날 때 마다 불닭볶음면과 치즈볶이를 섞어 먹으며 전우들과 우정을 쌓던 추억에서 부터 유래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솔직히 매운 음식과 스트레스 해소간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듯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이 땡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스트레스 받을 때 마다 오지게 매운 음식을 땀 뻘뻘 흘리며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기호와는 반대되는 나의 위장 상태가 매운 음식을 쉬이 받아 들이지 못하는 까닭이다. 매운 음식을 먹은 다음 날에는 지옥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내가 매운 음식을 먹는 때는 대체로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다. 1. 스트레스 받았을 것 2. 내일 집에만 처박혀있을 예정일 것. 오늘은 두 가지 조건을 아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날이었고 오랜만에 불닭볶음면을 먹기로 했다. 근데 그냥 먹었다가는 내일 또 폭풍설사를 할 수도 있으니 부드럽고 담백한 계란을 추가함으로써 매움을 중화시킬 예정이다. 이로써 1. 스트레스도 풀고 2. 내일 고생 안해도 되고 3. 어차피 만들어야하는 계란도 만들고, 무려 1석 3조의 효과를 보게 되었다.



오늘도 계란노 갯수와 두 개데스. 



오늘도 버터를 사지 못했다. 게을러 버린 것이었다라고 자책하기엔 솔직히 바빴기에 스스로 죄를 사하기로 한다. 대신 집에 우연히 있던 마가린을 사용한다. 냉동고에 오래있었어서 그런지 아주 꽝꽝 얼어있다.



칼로 마가린를 도려내서 스푼에 담아준다. 조금 많아 보이지만 버터는 많을수록 맛있다. 근데 마가린이니까 잘 모르겠다.



버터와 같이 녹여준다. 녹이면서 버터와 마가린의 차이점이 궁금해서 네이버에게 물어봤는데, 버터는 동물성 지방이고 마가린은 식물성 지방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 버터가 너무 비싸서 대체품으로 마가린이 탄생했고, 아무래도 풍미는 원조인 버터 쪽이 더 좋다고 한다. 게다가 마가린은 화학약품처리를 거치면서 트랜스지방이 생성된다는 단점이 있다. 보통 건강에 안 좋은게 더 맛있는 법인데, 버터와 마가린 사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고정관념이었다. 그래도 마가린은 버터보다 훨씬 싸고 상온 보관이 가능하며 사용 기한도 길어서 나름대로 버터와 구별되는 마가린만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모양이다.



왠지 녹은 모습이 버터와 약간 다른 것 같이 느껴지는데, 보통 이런 건 기분 탓이더라.



오늘도 반쯤 풀다가 귀찮아서 그만 둔 계란물을 뿌려준다.



주걱으로 슥삭



소금을 거국적으로 뿌려준다.



잔열로 익게 냅두고 불닭볶음면을 보러가자.



까르보 불닭볶음면의 출시는 내게 있어서 하나의 혁명이었다. 이전까지는 불닭만 먹으면 너무 맵기에 항상 짜파게티나 치즈볶이와 같은 라면을 함께 끓여 섞어 먹어 왔었다. 그러나 까르보불닭의 출시와 함께 이제 굳이 한 끼에 라면을 두 개 씩 섭취할 필요가 없어짐으로써 다이어트에 파란불이 켜진 것이다.



불닭을 잘 섞어주고 위에 스크램블 에그를 올린다. 까르보 불닭에게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가루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된다. 김가루를 대신해 후추와 파슬리와 파마산 치즈 가루와 깨소금을 알차게 뿌려서 마무리했다.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대개 매운 음식을 먹지만, 정작 먹으면서 이게 스트레스 해소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다 점점 혀가 마비되고 매운 느낌이 혓바닥을 강하게 감싸돌게 되면 그때부터 사고가 정지한다. 고통이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이면 배 아파서 화장실을 몇 번이고 갈테고 그러면 또 스트레스를 받게 되겠지만 일단 배가 아프니까 또 생각이 멈추게 되겠지. 일단 지금은 졸리니까 여기까지 써야겠다.


9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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