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민속순대타운, 신림 - 백순대볶음: 두 개의 탑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1. 2. 23:50
신림! 했을 때 제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백순대입니다. 그렇다고 신림 갈때 마다 먹는 음식인것도 아닌데 어째 제게 신림의 인상은 백순대로 박혀있습니다. 백순대는 순대를 양념없이 쫄면과 함께 철판에 볶아서 먹는 요리입니다. 물론 찍어먹을 양념장정도는 있습니다. 한식답지 않게 기름지고 눅진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식이라면 시뻘건 양념으로 피칠갑 하는 것이 기본값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한식을 주로 먹는 한국에서는 백순대를 파는 곳을 보기 힘듭니다. 대신 신림에 잔뜩 모여있습니다. 그것도 건물 두개에 각각 몇 층 씩을 오직 백순대볶음집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건물 속의 각 주인장들이 전국으로 헤쳐모여한다면 백순대볶음도 전국구사랑 받는 음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간만에 백순대볶음을 땡겼습니다. 한번만 땡긴 것도 아니고 무려 두번을 땡겼습니다. 물론 연달아 땡긴 것은 아니고 한 번은 몇 달전에 한 번은 지난주에 땡긴 것입니다. 연달아 먹기에는 조금 물릴 수 있는 맛이기 때문입니다.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해서 1년에 두번 먹기 좋은 음식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상반기를 보내느라 소급하여 하반기에 두번 먹은 것입니다.
신림역으로 나와서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길거리가 제일 더러운 골목을 찾아 들어가면 순대타운 건물 두 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네이버 지도를 믿고 가면 됩니다. 그 앞에 당도하면 크고 아름답게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두 개의 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순대 탑의 이름은 각각 민속순대타운, 양지순대타운입니다. 두 건물 모두 아마 2,3,4층이 순대타운으로 쓰이고 있을 겁니다. 도합 6층의 어마어마한 규모. 가히 순대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사실 컨텐츠는 모두 동일하다는 점이 함정입니다. 어딜가나 똑같은 메뉴를 똑같은 가격에 똑같은 조리법으로 팔고 있습니다. 이 무한 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각 순대집들은 경쟁 대신 동형화를 택한 듯합니다. 다시 말해 어딜가나 동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묘한 차이 정도는 있습니다. 날마다 기복이 있을 것을 고려하고 충분히 많은 수 만큼 방문한다고 가정했을때, 어느 집을 가나 결국 그 맛은 '거기서 거기' 정도 수준으로 회귀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 그리고 두 탑 이외에도 유일하게 1층에서 장사하는 또순이 할머니집이라는 핑크핑크한 인테리어를 가진 순대집도 있습니다.
이 날 함께한 친구가 자주 가는 단골집으로 갔습니다. 계단을 더 오르는 수고를 감수하고 3층에 있는 여수집으로 향했습니다. 방송도 여러번 탄 집이라고 합니다. 친구가 단골이 된 계기는 딱히 없는 듯하고 처음 왔을때 그냥 문 앞에 있어서 먹었다가 계속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사장님이랑 서로 얼굴 익힌 사이인 걸 보면 자주 오긴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곳 백순대가 양지순대타운 보다 무려 천원 저렴하다는 사실. 약 한달간의 텀을 두고 방문했는데 그 사이에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면 꽤 충격적입니다.
타운 내부 구조는 대강 이렇습니다. 여러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 시장통 같은 바이브입니다.
이런 철판에다 순대를 볶을 겁니다. 철판이 커서 그런지 책상이 작아서 그런지 어쨌든간 좁습니다. 앞접시 놓을 자리 확보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곳은 아저씨가 직접 철판앞에 서서 처음부터 순대를 볶아줍니다.
아저씨가 계속 앞에 있어니까 약간 민망해서 그냥 소주만 마시고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의 순수함이 이런 것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완성된 순대볶음. 완성품 위로 부추를 뿌려주십니다. 가운데있는 양념장과 함께 먹으면 되는 구조입니다.
기본적으로 당면 순대와 곱창, 양배추를 쫄면과 함께 볶은 것입니다. 곱창에서 나오는 기름에 재료들이 젖고 들깨가 더해지며 전체적인 음식의 풍미가 고소합니다. 기름진 고소한 맛입니다. 짭조름한 맛이 기본 베이스가 되고 곱창의 기름이 지방맛을 더하며 볶아지는 양배추에서 나오는 달달한 맛이 어우러집니다. 거기에 쫄면사리가 볶아지면서 전분을 뽑아내는지 전체적으로 눅진함이 끼얹져 집니다. 요약하면 고소하고 눅진한 곱창순대볶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선호하는 맛입니다. 강렬한 양념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지만 지방맛에 굉장히 기대는 요리이기에 금새 느끼해질 수 있습니다. 그럴때 등장하는 몇 가지 솔루션이 있는데 이제 살펴보시겠습니다.
첫 번째 솔루션은 깻잎입니다. 깻잎 특유의 향으로 느끼함을 걷어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독작전을 수행하기에는 향만으로는 조금 모자라지 않나 싶습니다.
두번째 솔루션은 양념장을 찍는 것입니다. 누가 한식 아니랄까봐 양념장은 이 요리에 없는 매운 맛을 잔뜩 담고 있습니다. 매운 맛으로 지방맛을 몰아내보는 방안을 강구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양념장 만으로는 어딘가 조금 모자른듯합니다.
그때 등장하는 크리에티브 띵킹! 둘을 더하면 어떨까하는 생각! 마치 에디슨이 닭장에서 달걀을 품듯 깻잎 속에 양념장을 품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전해보았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세번째 솔루션은 깻잎과 양념장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깻잎 덕분에 더 이상 젓가락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손으로 쌈을 싸먹을 수 있다는 장점까지 챙겨옵니다. 이 얼마나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식사법입니까. 네안데르탈인 시절 풀떼기를 뜯어먹던 우리 유전자의 기억을 동원해 백순대의 느끼한 맛을 걷어내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문제는 해결됐을까요?
여전히 느끼해서 소주를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 기준에서는 그렇게 까지 느끼하지는 않은데 그냥 오늘은 괜히 길게 적고 싶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본 것입니다. 고소하고 느끼한 거 좋아하시면 충분히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참기름이 올라간 간이 서비스로 나옵니다. 소소한 즐거움.
2인분을 시켰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친구 한 명 더 불러서 먹었는데도 조금 남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이번엔 지난주에 양지 순대타운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백순대를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동생과 함께했습니다. 양지 순대타운 2층의 순천집을 방문했습니다. 굳이 순천집을 간 이유는 그닥 없고 2층에서 제일 가까이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더 가까운 집도 있었는데 지나친 호객행위에 반발심이 들어서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호객이 너무 심해서 간판 사진 찍을 틈도 없었습니다. 제발 호객 stop..
순천집 간이 여수집 간보다 좀더 실하고 두툼하고 양도 많고 깨도 많습니다.
기본 구성은 같은데 깍뚝 무 대신 단무지가 나옵니다. 어차피 저는 안 먹어서 패스
여기는 사장님이 다 볶아서 내주십니다. 여수집과 가장 다른 부분입니다.
아 그리고 여수집보다 식탁이 좀 더 넓습니다. 양지순대타운도 좌석간 거리가 다닥다닥 좁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상대적으로 민속순대타운 3층보다는 넓습니다. 앞접시를 불편하게 두지는 않아도 되는 정도입니다. 큰 메리트.
스뎅 그릇에 담긴 양념장통은 여기도 가운데로 올리고 먹습니다. 맛은 크게 편차가 있지 않았지만 이쪽 쫄면 사리가 여수집보다 더 늘어붙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부러 늘어붙게 하신것 같지는 않고, 여러판을 동시에 볶으시느라 약간 신경 못쓰신게 아닌가 싶은데, 또 정작 제 입맛에는 이 늘어붙은 쫄면이 더 좋았습니다. 그놈의 마이야르 반응 덕분인지 맛이 더더욱 고소했습니다.
그나저나 철판 볶음 류에 쫄면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저번 오근내닭갈비 이후로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전체적으로 볶음 자체에 눅진함을 더해주는 것도 그렇고 완전 제 스타일의 재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도 2인분치고는 양이 많습니다. 백순대를 남기는 것은 어느 쪽 순대타운이든 숙명인가 봅니다.
뭔가 길게 쓴 것 같으니까 간만에 결론도 내보아야겠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어딜가나 맛 적인 측면에서는 상관이 없을 듯하고, 책상 넓이의 차이, 볶아서 나오느냐 눈앞에서 볶느냐의 차이, 천원 차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음 방문에는 어딜 갈거 같으냐면 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에 더 밟히는 곳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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