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옥, 여의도 - 깔끔한 국물의 어복쟁반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1. 3. 23:23
대부분의 한식은 빨간 국물이죠. 매콤칼칼하게 넘어가는 국물들이 한식의 대중적인 매력 포인트 입니다. 사실 국, 찌개, 전골류 류 중에 빨갛지 않는 한국 음식 찾기가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매운 것을 먹으면 땀을 흘리는 저는 종종 맵지 않은 탕류를 찾곤 하는데, 그때 마다 떠올리는 음식이 바로 어복쟁반입니다.
어복쟁반은 이북음식, 특히 평양의 향토음식입니다. 얇게 썬 소고기를 놋쟁반에 놓고 계란, 야채, 육전 등의 고명을 올려서 살살 끓여 먹는 전골류의 음식입니다. 다 먹었을 때 쯤에는 메밀면 사리를 좀 넣어서 끓여 먹기도 하고 한국음식 아니랄까봐 밥을 볶아 먹기도 합니다. 이북 음식 답게 특유의 슴슴한 맛으로 유명하지만, 또 막상 먹어보면 소고기와 야채에서 진하게 우러나온 감칠맛에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진짜 이북식으로 먹으면 소의 젖 부위인 유퉁이 들어가기도 한다는데, 그 특유의 향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고는 합니다. 유퉁이 들어간 어복쟁반은 남포면옥에 가면 먹어볼 수 있습니다. 저도 먹어봤는데 그닥 강렬한 향은 아니어서 별 생각없이 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그리고 이름이 '어복'쟁반이지만 정작 물고기는 들어가지 않는 독특한 음식입니다.
어쨌건 날도 춥고 해서 간만에 몸보신 할 겸 어복쟁반을 먹으러 여의도에 위치한 평가옥에 다녀왔습니다.


여의도에 있지만 여의도 역에서 내리면 한참 걸어야하고 샛강역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는 몰라서 그냥 IFC몰에서 부터 걸어옴.

던전 입구 같은 느낌의 입구로 들어가면 됩니다.

가족 모임이기에 예약도 하고 그랬더니 미리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약한 불을 살살 올리고 지각생들을 기다립니다.


밑반찬들이 쭉 깔립니다. 크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직화구이 집에서 자주 보이는 양파 절임이 나옵니다. 물론 어복쟁반 고기와 안 어울릴 이유야 없겠지만은, 조금 이 집만의 독특한 양념장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걸 기대할 만한 가격대이기도 하고, 또 찍어먹는 것이 지방 많은 돼지고기가 아닌 소고기 편육이기에 양파절임보다는 좀더 소고기의 섬세한 고기맛을 살릴 수 있는 장이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녹두지짐은 훌륭합니다. 바삭하게 잘 구워졌고 짭조름해서 계속 젓가락이 갑니다. 비록 가격이 비싸기는 하나, 뭐 여기가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런갑다 하기로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은 내가 계산하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멤버들이 모두 모여가니 육수를 더 붓고 불을 강하게 키웁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먹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어복쟁반 위 재료들의 구성은 메인이 되는 소고기 편육을 기준으로 위로 육전, 만두, 계란 등이 올라가고, 아래로 배추와 버섯 같은 야채들이 깔립니다. 소고기의 감칠맛과 아래 채소들의 감칠맛이 우러나오면서 맛있는 육수가 완성됩니다. 담백하고 개운하고 깔끔하다는 식의 수식어가 잘 어울리겠습니다. 다른 전골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밍밍하지 않고 먹을만 합니다. 간이 적절하게 되어 있어 그 누구라도 호불호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입니다. 자극적이지 않아 너무 좋은 맛.

고기 종류를 좀 더 다양하게 썼어도 좋았겠다 싶습니다. 사실 어복쟁반의 핵심이라고도 불리는 유퉁을 포함해서 몇몇의 부속고기가 들어가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예컨데 우설이라던가... 며칠전에 먹은 부일 갈매기 우설이 너무 괜찮았어서 자꾸 생각이 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부드러운 고기 위주인 어복쟁반에 쫄깃한 식감을 가진 우설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육전과 만두도 맛있습니다. 또 제가 워낙에 소고기 육전을 사랑하는지라 행복했습니다.

고기를 얼추 다먹고 나면 메밀면 사리, 즉 냉면 사리를 풀어서 또 후루룩 먹어줘야 합니다. 다만 메밀면의 특성 상 뜨거운 육수에 있으면 금새 퍼지기 때문에 넣자마자 대충 휘휘 젓고 바로 흡입해줘야 합니다. 우래옥에서 불고기 먹고 냉면사리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워낙 육수가 맛있으니까 면을 넣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조금 아쉬워서 수육 반접시를 추가 주문했습니다. 어복쟁반용 고기 추가하면 꽤 비쌌던 것 같은데, 그냥 수육 반접시만 해도 양이 꽤 되길래 그냥 국물에 넣고 끓여 버렸습니다. 어차피 어복쟁반에 기본으로 들어간 양지머리나 이 수육이나 끽해야 부위 차이 정도여서 그런지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립니다.

고기를 추가하니 야채도 더 있어야 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 야채 추가도 돈이 듭니다. 고기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이고, 또 어차피 내가 계산하는거 아니니까 쿨하게 추가합니다.

그리고 내가 계산하는거 아니니까 쿨하게 후식으로 냉면까지 주문합니다.
사실 평가옥에서 먹었던 평양냉면이 제 첫 평양냉면이었습니다. 평양냉면은 슴슴하기만 할 거라는 제 편견을 그대로 부숴준 집입니다. 다른 평양냉면 집과 비교해서 염도가 꽤 높은 편입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만삼천원 주고 먹기에는 조금 아쉬운 퀄리티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면이 너무 제 스타일 아닌고로.. 만삼천원이면 봉피양으로 달려가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남포면옥도 그렇고 어복쟁반 파는 집의 냉면들은 어째 저랑 잘 맞지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먹다가 재밌는 조합을 발견했습니다. 어복쟁반 속 뜨끈한 고기를 차가운 냉면에 싸먹는 것. 이 것 참 괜찮은 조합입니다. 뜨거운 국물을 한껏 품은 소고기와 찬 육수를 머금은 면이 동시에 입으로 들어갑니다. 혀에서 맞이하는 첫 인상은 뜨끈한 고기입니다. 그러나 한 입 깨무는 순간 시원한 냉면 육수가 그 따듯한 고기 조직을 뚫고 입안으로 쑥 들어옵니다. 고기와 면을 동시에 씹으며 남은 면들을 후르륵 빨아 들이면 계속 시원한 국물이 들어오고, 입안에서 냉온의 온도 대비가 일어나는데 이게 참 매력적입니다. 아마 다른 집 냉면의 툭툭 끊기는 면이었다면 이정도로 어울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평가옥 특유의 그 퍼진듯한 질감의 펑퍼짐한 면이기에 이렇게 부드러운 고기와 더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컨디션 안좋은채로 냉면 먹고 감기가 더 심해졌다는 것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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