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라멘, 합정 - 미소 라멘, 첫 경험, 성공적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1. 7. 08:33
합정역 근처에서 점심을 때울 일이 있었습니다. 라멘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희소식이었습니다. 왜냐면 합정역 부근에 어마어마한 라멘집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끝 라멘, 담택, 멘지 등등 그야말로 라세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이 날 저의 선택은 본라멘이었습니다. 사실은 세상의 끝 라멘이었는데 그 날 마침 페인트칠로 휴무한다는 첩보를 듣고 바로 선로를 돌려 본라멘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실은 느긋하게 걸어갔습니다.
합정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 라메니스트 자리라는데 라멘 공력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 저로서는 그닥 와닿지 않는 위치 설명이었습니다. 아무튼 유명했던 라멘집이 있었던 자리에 오픈한 나름 신상 라멘집입니다. *19년 11월 기준
메뉴는 심플합니다. 미소라멘과 매운 미소라멘 둘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됩니다. 미소라멘을 고르게 되면 다시 보통맛과 진한맛 사이에서 선택지를 골라야 합니다. 분기점 뒤에 또 분기점이 기다리고 있는 마치 미연시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연시를 플레이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라메니스트를 추모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남은 냅킨이 아까워서 재활용하는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본라멘에서는 라메니스트의 로고가 들어간 냅킨으로 입을 닦을 수 있습니다.
물도 따라 마실 수 있습니다. 뒷편으로 깍두기를 담아 먹을 수도 있는데 저는 원래 깍두기를 먹지 않는 편인지라 그냥 패쓰합니다. 패쓰하느라 사진도 패쓰했습니다.
매장은 ㄷ자 구조로 테이블 없이 다찌석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자판기가 있을 것만 같은 비주얼의 가게인데 주문은 사람이 직접 받습니다. 아직 AI에게 점령 당하지 않은 아날로그 형 라멘 가게입니다. 깔끔한 나무 기반의 인테리어에 전기 코드가 있습니다. 라멘 먹으면서 핸드폰을 충전하면 몸도 마음도 함께 충전되는 기분 일 것 같습니다.
미소라멘이 나왔습니다. 미소라멘이란 일본식 된장인 미소를 베이스로 한 라멘입니다. 삿포로 지방을 대표하는 라멘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먹어보는 종류의 라멘입니다. 사실 수년전에 일본에 놀러갔을 때 한 번 우연히 먹어봤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희미한 것인지라 그냥 이번 본라멘의 미소 라멘을 제 첫 미소 라멘으로 기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물을 떠서 맛보는 순간 바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첫 국물을 입에 갖다 댄 그 시간 부로 본 라멘은 "11월 이 달의 우수 라멘"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이 날은 11월 1일이었는데, 달의 첫째날에 "이 달의 우수라멘"이 선정된 것은 최초이며 이례적인 일입니다. 참고로 본 라멘은 "이 달의 우수 라멘" 의 1호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스프가 아주 좋습니다. 미소 장국에서 느끼던 그 미소의 향이 훨씬 더 진하고 구수하게 담겨있습니다. 전체적인 국물의 밸런스도 염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적절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너무 느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라이트하지도 않은 지점을 잘 잡아낸 것 같습니다.
면은 라멘치고는 흔치 않은 꼬불면을 씁니다. 이게 미소 라멘에는 더 잘 어울린다고 많은 라멘 인스타에서 입모아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면 익힘 정도가 괜찮아서 맛있게 먹긴 했지만 특별히 미소 라멘 스프에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그냥 면 쓴 미소 라멘과 꼬불면 쓴 미소라멘을 나란히 두고 먹어봐야지만 풀릴 의문이겠습니다.
저기 보일락 말락하는 버섯도 재밌습니다. 느타리 비슷한 버섯으로 보이는데 보통 라멘에서는 잘 보기 힘든 종류의 버섯입니다. 된장국에 들어있는 버섯을 연상시킵니다. 아마 그걸 의도하시고 넣은 것이 아닐 까 싶습니다. 면을 잘 풀다보면 위에 뿌려져 있던 마늘 후레이크의 향도 국물로 배어 들어 전체적인 풍미를 향상 시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딱 적절한 수준에서 마늘향이 올라와서 좋았습니다. 좀 더 강했더라면 과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라멘의 킥 포인트는 바로 차슈입니다. 두툼한 차슈. 씹히는 식감도 먹는 맛도 정말 좋습니다. 그냥 차슈 단품만 먹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근데 그걸 굉장한 국물과 함께 먹으니 더 행복했습니다.
한국인이면 밥을 무야지 식사를 한 것입니다. 면은 간식이라고 우리 어르신들은 항상 이야기하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냅다 말았습니다. 아 이 국물은 면보다는 밥과 더 잘 어울리는 구나. 먹으면서 느꼈습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인 것입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면을 밥으로 교체할 수도 있다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다음 방문에는 미소 라멘 대신 미소국밥을 먹어야 겠습니다.
최근 이 라멘 저 라멘 먹으러 종종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렇게 새로운 장르의 라멘을, 그것도 이곳처럼 아주 훌륭한 퀄리티로 만날 때면 라멘의 세계에 더욱 매료되곤 합니다. 매일 라멘만 먹으러 돌아다니는 인스타의 수많은 라멘러들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조만간 재방문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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