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다소바, 서촌 - 감칠맛 테마파크 마제소바

최근 새롭게 접한 음식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마제소바를 꼽겠습니다. 그렇게 많이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멘야하나비, 칸다소바 등의 마제소바 전문점과 몇몇 라멘집의 마제소바를 맛보면서, 이 음식은 결코 맛 없을 수 없는 구조를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제소바는 일본어로 섞다, 비비다라는 뜻의 '마제루'와 국수(원래는 메밀국수라는 뜻이지만 그냥 국수도 종종 소바라고 부른다고 하는듯)라는 뜻의 '소바'가 합쳐진 단어로, 간단히 일본식 비빔면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이 마제소바는 나고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요미식회에도 나왔던 멘야하나비를 필두로 2017년쯤부터 인스타를 통해 알음알음 매니아층을 형성해 왔고 지금은 여기저기 라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마제소바를 한 단어로 압축해보자면 바로 '감칠맛'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온갖 감칠맛 가득한 재료를 한 그릇에 몽땅 때려박아 만든 음식입니다. 감칠맛이 면에 섞여 걸쭉하고 농밀하게 밀고 들어오는데 이를 과연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한 번 먹어보면 두번 다시 찾게 되는 마성의 음식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간만에 마제소바가 땡겼고, 마침 서촌에서 일하는 친구도 만날 겸, 칸다소바로 향했습니다.

 

서촌 동네 좋다

경복궁 역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금방 칸다소바가 눈에 들어옵니다. 홍대에 있는 칸다소바는 일전에 한 번 방문한 적 있으나 서촌은 처음입니다.

 

해장이 필요해서 콜라도 하나

메뉴는 오직 마제소바 하나. 호불호 없는 마제소바에 대한 가게의 자신감이 엿보입니다.라고 하기에는 사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인지라 다른 요리들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동경식 마제소바라는게 따로 있다는 것

어느 마제소바 집을 가더라도 적혀있는 마제소바 맛있게 먹는 법. 대충 비벼서 먹다가 식초 뿌리고 밥도 말아먹으라는 내용입니다. 

 

단무지와 식초가 있습니다. 사실 마제소바는 먹다보면 다소 물리는 경향이 있기에 이렇게 산미를 잡아줄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마제소바 (9,500원)

오래기다리지 않아 마제소바가 나왔습니다. 정가운데 노른자를 비롯해 간고기, 어분, 부추, 파, 김 등등이 보입니다.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재료들이 더 들어있겠습니다. 이 재료들의 대부분의 공통점은 바로 감칠맛에 있습니다. 감칠맛은 짠맛과 만날 때도 상승기작을 나타내지만 또한 다른 감칠맛과 만날 때도 그 맛이 상승합니다. 단순히 1+1=2가 아닌 더 큰 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노른자 빨리 터뜨리고 싶어

그러한 포인트를 집요하게 잘 이용한 것이 바로 이 마제소바의 매력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온갖 다른 종류의 감칠맛들을 각각의 재료들로부터 끌어내 서로 섞은 뒤 적당한 짠맛과 지방맛 사이로 밀어 넣습니다.

 

면 온도가 은근히 뜨끈해서 해장도 된다

한데 뒤엉킨 감칠맛들은 풍부하고 농후하게 맛을 끌어냅니다. 감칠맛이 눅진한 비빔소스는 면에 딸려 입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적당히 치감 있게 삶긴 면은 그 맛들이 그 진가를 더욱 보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줍니다. 

풍부한 감칠맛이 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가운데, 자칫 피로해질 수 있는 혀를 구원하는 것은 겉으로는 잘 들어나지 않는 아주 약간의 산미 입니다. 그렇다고 눈치 못 챌만큼의 소량은 아닙니다. 표면 바로 밑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혀는 감칠맛에 지치다가도 뒤에 산뜻하게 찾아오는 산미에 다시 힘을 냅니다. 고춧가루에서 오는 약간의 매콤함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너무 많이 넣으면 너무 시다

절반쯤 먹었을 때 다시마 식초를 넣으라는 식당의 제안은 아주 유효합니다. 표면 밑에 있는 신 맛을 밖으로 끌어내지 않고서는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시점에서 감칠맛에 다소 물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략 두바퀴 정도 다시마 식초를 둘러주면 신맛을 중심으로 마제소바 한 그릇의 맛이 재정립됩니다.

 

누렁아 밥먹자

그렇게 면을 다 비우고 나면, 카운터로 그릇을 넘겨 밥을 받습니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밥이지만 마제소바의 남은 소스와 만나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밥이 들어감으로 살짝 높아졌던 소스의 산도는 다시 두드러지지 않는 평이한 수준으로 돌아가고 밥과 섞여 다시 강렬한 감칠맛을 혀로 전달합니다.

 

나도 같이 먹자

비주얼은 개밥이 됐지만 이게 개밥의 맛이라면 저는 기꺼이 개가 되겠습니다. 온갖 감칠맛들이 뛰노는 가운데 수저를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감칠맛에 치여 기쁘고 행복한 한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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