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멘야, 신촌 - 자극의 미학, 매운 라멘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1. 15. 23:15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맛은 무엇일까요. 뭐니뭐니 해도 바로 빨간 맛일 겁니다. 뻘건 국물에서 풍겨져 나오는 코를 아릴 듯한 매운맛. 먹으면 혀가 아프고 속이 아프지만 또 그만큼 시원하고 중독적입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항상 매운 음식들이 땡깁니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음식들은 천편일률적이라고 할 만큼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들 빨간 양념으로 치장을 했다는 겁니다.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지의 절반이 매운 음식이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물론 꼭 나쁘다고는 할 수만은 없겠지요. 그럼에도 종종은 어딜가나 비슷한 매운맛에 지치고 맙니다. 고춧가루를 잔뜩 뿌려 매운 맛들이 우리의 식탁을 점령했다는 기분입니다. 똑같이 매운 음식을 먹더라도 가끔씩은 세련된 매운 맛을 볼 수는 없는 걸까요. 그런 의문이 머리 속을 자꾸만 스치던 어느 날, 매운 라멘을 전문으로 하는 카라멘야에 방문했습니다.
신촌 대로변을 지나 조금 걷다보면 카라멘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규자카야 모토, 충화반점들을 연달아 성공시킨 유우명 블로거인 비터팬님이 운영하는 집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저는 규자카야 모토든 충화반점이든 가본적이 없어서 그닥 네임밸류에 대한 기대는 없었고, 사실 그냥 주변에 있는 괜찮은 라멘집이 여기 밖에 없어서 들렸습니다.
메뉴는 간소한 편입니다. 매운면이라는 뜻의 카라멘이 기본맛과 진한 맛으로 제공되고, 본라멘과 마제소바가 있습니다. 본라멘은 먹어보지 못해서 무슨 음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합정에 있는 본라멘과는 그닥 상관없는 맛이지 않을까 싶고 아마 맵지 않은 라멘이 아닐까 하는 추측 뿐입니다. 마제소바는 기본적으로 비빔면인데 어딜가나 맛있기에 이걸 시킬까 하다가 기왕 카라멘야 까지 온거 매운 맛좀 보자 싶어 카라멘을 주문했습니다. 최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기도 했기에 매운 음식을 한 번 먹을때가 되긴 했습니다.
가게 내부는 ㄷ자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방과 이어진 그 가운데 통로로 직원분들이 돌아다니며 라멘을 서빙해주십니다.
카라멘야의 맵기는 n신으로 결정됩니다. 기본적으로 8신을 추천하시는 듯하며 신라면 맵기라고 적혀있습니다. 매운 것만 먹으면 땀을 터뜨리는 저로서는 감히 8신까지는 도전 못하겠고 무난하게 가보자는 마인드로 5신을 주문했습니다. 또 매운 것을 먹으니 이걸 조금이나마 중화해주자는 마인드로 차슈를 추가해봤습니다. 차슈에 붙어있는 지방이 그나마 매운 맛을 가셔주기를 기대하면서요.
정가운데 들어있는 방울토마토에서 부터 센스가 엿보입니다. 먹어보기 전부터 저 방울토마토가 이 라멘 한 그릇 중간에서 맛을 환기해 줄것이라는 사실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습니다.
면은 적당히 삶긴 얇은 면입니다. 적당한 익힘으로 잘 삶겼습니다. 그러나 국물은 조금 뜨겁습니다. 뜨거움에 민감한 온도충으로서 이 라멘의 온도는 다소 높다고 느꼈습니다. 라멘이 나오자마자 수저로 떠서 바로 맛보기에는 온도가 조금 높습니다. 혀가 데이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다소 높은 온도가 주방으로부터 설정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당초에 이 라멘이 추구하고 있는 바는 매운 맛으로부터의 자극적인 맛입니다. 그렇기에 미지근한 온도보다는 뜨겁게 온도를 설정하여 더욱 맵고 뜨거운 아주 자극적인 맛을 선사하는 것이 좀더 이 라멘의 컨셉에 좀더 부합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마치 이전에 포스팅했던 양평동 또순이네와 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이미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점령한 한국의 요식업 시장에서 매운 맛으로 돋보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략이 오히려 더 경쟁력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점원분이 라멘을 내주시면서, 라멘을 반쯤 먹고나서는 이 빨간 액체를 추가해서 먹어보기를 추천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두바퀴 쯤 둘러서 먹어봤습니다. 맛의 적극적인 변화는 모르겠고 조금 더 매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미 라멘의 매운 맛에 의해 혀 미각이 많이 나간 이후라 세세한 맛의 변화가 있었더라도 느끼지 못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가게에서 추천하는 8신보다 낮은 5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입에는 조금 매운 편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맵찔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카라멘은 확실히 한국 시장에 널리고 널리 그 흔한 매운 맛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저 고춧가루든 뭐든 쏟아부어 무조건 맵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세련되고 맛있게 매운 맛을 잘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잘만든 매운 맛이라고해서 안 매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가운 새로운 매운 맛이었습니다. 비록 매운 것을 잘 못먹는 제게는 그닥 맞지 않았으나, 매운 음식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정말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한 그릇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정기 간행물 > 고메 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목식당, 중앙대 - 골목길 수제비 (0) | 2019.11.17 |
---|---|
칸다소바, 서촌 - 감칠맛 테마파크 마제소바 (2) | 2019.11.17 |
수하동, 여의도 - 마라톤 후의 행복 곰탕 (0) | 2019.11.15 |
합정옥, 합정 - 뜨끈한 수준급의 곰탕 (0) | 2019.11.14 |
진미보쌈, 광명시장 - 직접 빚는 막걸리와 유니크한 특주 (6) | 2019.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