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테리아 오르조, 한남동 - 맛있는 파스타란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1. 19. 09:05
이탈리아에 가보지 못한 저는 맛있는 파스타의 기준을 어디에서 잡아야 할까요. 제가 집에서 야매로 만든 파스타 보다 먹을 만한 파스타라면 맛있는 파스타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파스타란 음식의 맛있고 맛없음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뭐든간에 맛만 있으면 되겠지만 그럼에도 '진짜' 파스타에 대한 의문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소위 정통 파스타를 먹어본다한들 알 수 있을 내용일까요.
그럼에도, 정말 잘 만든 파스타라면 입에 면을 돌돌 말아 넣을 때 행복감을 줄 것 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포크질을 하게 만드는 파스타 그런 파스타가 바로 맛있는 파스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그 객관적인 기준은 정할 수 없더라도요.
며칠 전 저녁, 한남동에 위치한 오스테리아 오르조에서 그런 파스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동네가 원래 그렇듯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그닥 좋은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육교도 건너고 지도어플도 잘 보고 그렇게 찾아가야겠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한 건물 2층에 위치한 오스테리아 오르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티비에서 종종 나오던 김호윤 셰프가 운영한다고 알려진 집입니다.
메뉴판입니다. 전체적으로 배불리 먹는 그런 스타일의 메뉴들은 아니고 와인 한잔 곁들여 먹기 좋은 그런 느낌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방은 오픈 키친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셰프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바 자리 몇 개와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는 식당입니다. 아마 어지간해서는 예약은 거의 필수이지 않나 싶습니다.
전체적인 가게 분위기에 알맞는 커틀러리들.
얇고 길쭉한 치즈스틱 비스무리한 것이 웰컴푸드로 나옵니다. 짭조름하고 치즈향이 있어 나쁘지 않습니다.
우선은 내추럴 와인 두 잔을 주문했습니다.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아서 내추럴 와인이라는데, 그런 수식어들을 다 빼놓고도 맛이 좋아서 좋았습니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쌉싸름함과 포도향이 좋습니다. 포도주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보통 레드 와인들과는 다르게 차갑게 나오는데 이것도 쌉싸름함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냥 맛있는 와인이었다는 것 말고는 사실 와알못인지라 딱히 더 할 말이 없는 듯 합니다.
먼저 화이트 라구 파스타가 나왔습니다. 트러플 페스토에 직접 가게에서 만든 따야린 면을 썼다고 합니다.
생 트러플을 만원주고 추가했더니 직접와서 즉석에서 뿌려주십니다. 신나부러
정말 맛있는 파스타였습니다. 겨우 한 그릇에 4만원 가까이 되는 만만찮은 가격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사실 내가 계산안함) 일단 파스타를 맛봤을때 첫 번째로 치고 들어오는 것은 바로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하게 올라오는 트러플 향입니다. 매력적인 트러플 향이기에 전면에 나서 강렬하게 모습을 드러내보일 법도 한데, 여기서는 오히려 후방에서 풍부한 향으로 파스타 전체의 풍미를 상승시킵니다. 트러플 향을 중심으로 화이트 라구 소스가 빛을 발합니다. 마치 원래부터 같이 요리하기로 설계되어 나온 것 마냥 이 둘의 조합은 아주 잘 어울립니다.
오래 끓여 감칠맛을 잔뜩 머금은 라구 소스는 얇은 따야린 면과도 잘 어울립니다. 보통의 파스타 면과는 아주 다른 느낌인데, 라멘집의 호소멘을 중간 정도의 삶아냈을 때의 식감과 비슷합니다. 얇은 면이지만 소스를 충분히 입까지 끌어 올려 줍니다. 면은 고기, 트러플과 함께 씹히는데 씹을 때마다 새어 나오는 짭조름하고 감칠맛나는 육즙과 버섯향이 매력적입니다. 첫 한 입 부터 제게 행복감을 주기에 충분한 파스타입니다.
안타깝게도 양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 아쉬움에 남은 쏘스라도 퍼먹어봤습니다. 여운이 남는 맛입니다. 이런 파스타라면 앉은 자리에서 세 접시라도 비우고 밥까지 비벼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 메뉴는 플레이트에서 골랐습니다. 수비드, 즉 저온에서 오래 조리한 항정살을 여러 겹 층을 쌓은 감자와 함께 먹는 요리입니다. 우선 항정살을 썰어보는데 이것 참 고기의 질감이 아닌 것만 같이 부드럽게 잘립니다. 항정살의 두터운 지방과 살코기를 동시에 비슷한 수준의 질감으로 요리해냈습니다. 특히 항정살의 지방을 다루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애당초에 부드럽게 조리되었기에 입 안에서도 저항감 없이 금새 잘게 쪼개집니다. 이를 쓰지 않고 혀로도 부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감자는 무난하게 조리되었고, 간장소스와 함께 먹기에 좋습니다. 하얀 소스 무슨 맛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버리는 것..
하지만 결국은 재료의 한계, 즉 지방을 잔뜩 품은 항정살로 요리한 음식인만큼 느끼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소스도 그런 느끼함을 잡아주는 신맛이나 쓴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기에, 쌉쌀한 와인이 없다면 금방 물려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와인이 있어서 끝까지 맛나게 먹음
메뉴 두 개로는 도저히 배가 차지도 않고, 아까 먹은 파스타의 감동도 아직 남아있고 해서 추가한 우니 파스타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눅진한 오일파스타의 느낌입니다. 그 위로 우니가 하나 떡 하니 올려져 있는 모습. 사진 찍기 좋은 자태입니다.
사진 촬영이 끝나면 직원이 우니를 큰 수저에 놓고 포크로 사정없이 으깬 후 파스타에 다시 섞어줍니다. 이제 겉보이기로는 더 이상 우니파스타라고 부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니의 눅진한 맛이 그대로 파스타에 베어들었습니다. 꾸덕한 크림 파스타를 먹는 느낌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파스타면에 버터와 경성 치즈, 후추만 뿌려 먹는 버터 파스타를 기반으로 그 위에 우니가 맛의 레이어를 한 겹 더 얹은 그런 느낌입니다. 버터 파스타를 해먹어보신 적있다면(이거 근데 진짜 맛있음) 거기에 우니 특유의 그 눅진하고 풍부한 느끼한 맛을 더한 걸 상상하지만 바로 이 우니 파스타의 맛이 됩니다. 이 파스타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풍부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소하고 눅진한 풍부함입니다.
다만 이 파스타는 조금 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식당에 들리기전 리뷰를 참고했을때, 메뉴가 전체적으로 짜다는 의견들이 좀 있었는데, 그 의견에 부합할 만한 메뉴는 이 메뉴 뿐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세 메뉴 밖에 안 먹었기에 다른 메뉴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거는 사람에 따라 좀 짜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와인이 있어서 짜도 잘 먹었습니다.
첫번째로 먹은 화이트 라구 파스타는 정말 발군입니다. 서론에서 언급한 맛있는 파스타의 대표적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가격대는 꽤 높지만 그럼에도 기분 내고 싶은 날이라면 한 번쯤 들러서 행복감을 맛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덕분에 기분 좋은 저녁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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