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 오야지, 서울숲 - 시그니처 라멘의 품격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서울숲 메가박스까지 기어코 가서 세시간 반 짜리 영화 '아이리시맨'을 보고 나니 시간은 벌써 점심 시간. 딱히 땡기는 건 없는데 뭘 먹긴 먹어야겠고, 그럴 때 마다 가장 만만한 메뉴는 바로 라멘. 서울숲 주변에 괜찮은 라멘 집이 하나둘 쯤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만난 곳이 바로 이곳 라멘 오야지입니다.

 

조금은 애매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 어플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겠죠? 절대 음식점이 없을 것만 같은 건물 2층에 라멘 오야지가 있습니다. 이상한데 있다고 그래서 찾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건물 앞에 입간판이 있어서 100미터 앞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층에 올라오면 이런 간판이 또 있고, 그 옆에 있는 녹색문을 열면 라멘 오야지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녹색문도 찍고 싶었는데 자꾸 사람들이 왔다갔다해서 민망해서 못 찍어버림 ㅜㅜ

 

메뉴판입니다. 이것저것 있기는 한데, 저는 오늘 첫 방문이기 때문에 시그니처 라멘을 먹어볼 생각입니다. 

다만 메뉴 설명상으로는 쇼유라멘에 트러플 향미만을 추가하고 2,500원이 추가된 듯한데..음 이유가 있겠지요..?

 

키오스크에서 가볍게 주문을 해주고, 자리에 가서 기다리면 됩니다.

 

ㄷ 모양 바 자리 이외에도 테이블이 꽤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럿이 와도 문제 없겠습니다. 가게 전체적인 인테리어도 상당히 깔끔합니다. 낡은 건물이지만 인테리어를 잘해서 세련되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며칠 전 들렀던 유즈라멘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사실 라멘 맛에서도 유사성을 보이는데.. 이건 잠시후 라멘 사진과 함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일회용 젓가락과 넓적한 수저. 특별할 것은 없죠?

 

오야지 라멘 (10,000원)

라멘 오야지의 시그니처 라멘인 오야지 라멘이 나왔습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쇼유(간장)입니다. 닭과 조개 육수를 블렌딩했다는데 닭의 비중이 좀 더 높은 듯 합니다. 시각적으로도 진한 닭기름의 기운이 엿보입니다. 

라멘을 받아든 첫 인상은 '어? 이 냄새는..?'이었습니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트러플의 향이 코를 자극합니다. 사실 오야지 라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채로 찾은지라 몰랐는데, 이 곳 역시 트러플 라멘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유즈라멘에 이어 연타로 트러플 라멘을.. 누가 보면 제가 트러플만 쫓아 다니며 먹는 줄 알듯..

암튼 가격대로 보았을 때 생트러플이 들어갈 리는 없는 듯하고, 아마 트러플 오일 정도를 살짝 가미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생트러플을 넣은 유즈라멘과 비교하면 어떻느냐? 개인적으로는 라멘 오야지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유즈라멘의 생트러플라멘은 트러플 향이 조금 과도해, 라멘 자체의 매력이 조금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 곳 라멘 오야지는, 비록 생 트러플을 넣지는 않았지만, 트러플 향이 후방배치되어 전체적인 라멘의 풍미를 받쳐줍니다. 진하고 기름기 있는 닭육수에 트러플 향이 잘 어우러져있습니다. 트러플 향이 라멘 스프 위에 떠다니는 것이 아닌 수저(水底)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옵니다. 거기에 개운한 조개 육수가 약간의 감칠맛을 거들면서 매력적인 육수가 탄생합니다. 

 

국물 맛있어서 한 번 더 찍음

면은 어느 정도 두께가 있는 중면입니다. 익힘 정도가 괜찮아 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이런 중면을 만날 때마다 짬뽕면이 떠오르는 것은 제 내공이 모자르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러나 저러나 육수와 잘 어울렸습니다. 이 스프라면 중면이 얇은 면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스프의 매력에 빠져 정신 없이 먹다가 한번 정신을 바짝차렸습니다. 그 포인트는 바로 닭가슴살 차슈.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하는 수비드 방식으로 익혔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라멘집을 다니며 수비드 차슈 몇 장을 먹어봤는데, 이 집 닭가슴살 차슈는 단연 발군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슈 추가할 껄 그랬어. 돼지고기 차슈도 꽤 괜찮은 편인데 닭가슴살이 너무 훌륭해서 잘 기억이 안나는 케이스.

 

맛달걀(아지타마고)도 준수합니다. 반숙이 딱 제가 사랑하는 정도로 되어 나왔습니다. 흑흑. 

그 외에 멘마(죽순)도 괜찮고 조개 살도 괜찮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쉬울게 하나 없다는 느낌입니다. 

 

결국 국물까지 다 비웠습니다. 국물에 염도가 좀 있는 편이라 사실은 조금 버거웠습니다. 그래도 원체 맛이 잘 잡힌 스프인지라 남기기엔 아까웠기에 다 마셔버렸습니다. 

이 정도면 업장 이름을 달고 판매하는 시그니처 메뉴로 내세울만하다 싶습니다. 라멘 한 그릇에 만원이라는 가격이 결코 저렴한 것이 아닌데,완성도를 이 수준으로 낸다면 과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습니다. 품격이 느껴지는 한 그릇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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