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분식, 한양대 - 그 때 그 알밥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2. 2. 08:49
학교 앞 시장 골목에는 분식집이 참 많았습니다. 알촌의 전신이 되는 노벨분식부터 해서 맛나분식, 그린분식, 또 무슨분식, 무슨분식해서 그야말로 분식점 전성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 분식점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맥주집, 고깃집들이 들어서더라구요. 노벨분식은 알촌에 전념하면서 시장에 있던 가게 운영을 접고, 맛나분식은 고깃집으로 업종을 변경하고 결국 이 시장 골목에 남은 분식집은 이제 몇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맛나분식을 참 자주 들렀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그곳의 치돌알(치즈돌솥알밥)을 먹을 수 없게 됐네요. 왕십리에서 먹었던 첫 끼가 바로 그 치돌알이었기에 애정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는데..
뭐 어쩌겠습니다. 자본 논리에 따라 상점이 빠지고 들어오고 하는 것은 아담 스미스가 말한 사회의 섭리. 오늘은 아직 건재하게 장사 중인 그린분식으로 향합니다.
여러 식당이 망하고 점포를 뺐지만 예전부터 명성이 높던 식당들은 대부분 건재합니다. 그린분식도 그렇고, 김치찌개가 유명한 장어구이집, 사철냉면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되는 모습입니다. 그린분식은 심지어 거의 만석.
식당 내 손님들 연령대는 대부분 20대 초반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신입생들의 수요가 있으니 그린분식은 앞으로도 끄덕 없겠군요.
이곳은 치킨마요도 맛있고 제육볶음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선택한 메뉴는 치즈알밥. 맛나분식의 치돌알이 땡기는 날이었거든요. 정말 별거 없는 맛인데도 왜 그리 가끔씩 그 맛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입생 시절 선배들을 졸졸 따라가 얻어 먹었던 밥이어서 그런걸까요.
저는 항상 맛나분식의 치돌알을 최고로 쳤습니다. 가끔 친구들과 어디 분식이 제일 맛있냐는 논쟁이 붙으면 전 항상 맛나분식의 편이었지요. 그리고 저는 항상 소수파였습니다. 다수파는 대개 그린분식이었습니다.
어느 학교 앞에나 하나 있을 법한 그런 알밥의 모양새입니다. 밥 위에 민찌(간 돼지고기), 치즈, 김치, 계란, 김, 채소, 날치알 같은 것들을 올려 슥슥 비벼 먹는 간편하고 든든한 식사입니다. 뜨끈한 돌솥에서 싸구려 치즈가 녹으면서 밥알들이 끈끈하게 뭉쳐지고 김치 국물은 빨간 색으로 알밥의 인상을 담당합니다. 빨리 먹고 싶어도 성실하게 비벼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렇게 싹싹 비비고 나면 먹음직스러운 한 숟갈을 뜰 수 있습니다. 알밥은 달지 않고, 고기와 치즈의 짭짤한 맛이 지배적인 가운데 김치가 중심을 잡습니다. 누구는 유치한 맛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식사는 혀로만 하는게 아니잖아요.
밑반찬은 셀프입니다. 원래 밑반찬을 잘 안 먹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분식집 오뎅이 그렇게 땡겨서 조금 가져왔습니다. 가져오는 김에 다른 반찬들도 딱 한 젓가락씩만 집어왔습니다. 보통 반찬통 속에서 오뎅이 시원하게, 사실은 거의 차갑게, 보관돼서 뜨거운 알밥이랑 궁합이 잘 맞거든요. 근데 이 날 오뎅은 나름 미지근한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추억이 혀끝을 살랑살랑 스쳐가네요.
오뎅은 그렇게 넘기고, 시원한 김치와 함께 알밥을 마저 먹습니다. 알밥에도 김치가 들어가지만 저는 한국인이니까 김치에 김치를 올려 먹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새콤한 맛이 조금 더 필요하기도 했구요.
학교를 아예 떠나고 나면, 다시 이 알밥을 맛볼 기회가 있을까요. 학교를 떠나고나면 이 알밥이 그리울까요. 가끔씩 이 알밥을 위해서 왕십리로 향하게 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타지에서 엄마가 보고 싶을때 엄마의 집밥이 그리운 것처럼 학교가 그리운 날엔 이 알밥의 치즈맛이 혀끝에 맴돌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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