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집, 한양대역 - 기다려 먹는 김치찌개

한 때 왕십리의 김치찌개 패권은 시장 골목 안에 위치한 '장이구이집'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호명은 장어구이집이지만 장어구이보다는 김치찌개로 유명한 곳으로, 저렴한 가격과 괜찮은 맛으로 왕십리의 수많은 술꾼들과 학생들을 끌어당겼죠. 그러던 어느 날 혜성 같이 나타난 신인이 왕십리 김치찌개 패권에 도전합니다. 그 도전자의 이름은 이돈집. 그 선택지 풍부한 왕십리 상권에서 매 점심마다 줄세우기를 하며 입소문을 탔습니다. 김치찌개도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고 가게도 깔끔했으니 이유있는 돌풍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장어구이집이 휘청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술먹고 싶은 사람들은 계속 장어구이집으로 가고 밥먹고 싶은 사람들은 이돈집으로 향하며 사이 좋게 왕십리 김치찌개계를 양분했다는 훈훈한 결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오늘 밥을 먹는 날이었고 그래서 저는 이돈집으로 향했습니다. 

 

간만에 들리는 이곳
간만에 학교 동기와 함께 했다

이돈집은 한양대 앞 알촌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매일 주변 대학생들이 점심을 해결하러 내려오는 곳입니다.

이돈집의 악명높은 웨이팅을 고려해 점심시간보다 일찍 점심 약속을 잡았습니다. 11시 30분쯤이면 웨이팅이 없지 않을까라는 추측.

 

가게가 11시 오픈이고, 학생들 수업이 대개 11시 45분은 되어야 끝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널널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었습니다.

 

경보기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난로

하지만 어림도 없지. 바로 웨이팅에 걸려 대략 20분을 대기하고 입장했습니다. 학기 시즌에는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그래도 추울까봐 나름 난로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날이 너무 추워서 그리 따듯하지는 않음

 

 

메뉴를 보시면 알 수 있으시겠지만 상당히 저렴합니다. 둘이오면 2만원 안쪽으로 김치찌개도 먹고 제육도 먹고 밥도 먹고 계란후라이도 먹고 맥주도 먹고 할 수 있습니다. 양도 적지 않으니 학생들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 오늘 제가 주문한 것은 사람이 두명이니 17,000원짜리 반근세트. 

이돈집에서 웨이팅이 길게 걸리는 이유는 바로 테이블 수와 회전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요에 비해 테이블 수는 턱없이 적은 6개에 불과하고 끓여서 먹는 김치찌개의 특성상 식사가 오래 걸리기도 하니 아무래도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요.

 

적나라한 동기의 뱃살

이돈집 제일 처음 왔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바로 이 물건입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한참을 들여봤으나 그 누구도 정답을 맞추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타이머였습니다. 김치찌개가 나오면 직원이 타이머를 돌려놓고 갑니다. 울리면 그때부터 쿰척쿰척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라면사리 (1,000원)

라면사리를 1000원 내고 추가하면, 저기 바께쓰 채로 갖다주십니다. 나름의 무한리필 시스템.

 

찌개에 들어갈 부수기재들 (세트에 포함, 17,000원)

국물이 나오기전에 이미 이렇게 초벌된 고기, 두부, 파를 갖다 주십니다. 김치찌개 국물이 나오면 그때 재료들을 투하해서 한번 다시 끓인 후 먹는 시스템입니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고기를 볼 수 있으니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마가린밥 (세트에 포함, 17,000원)

흔한 공기밥 대신 마가린밥을 제공합니다. 거기에 달걀 후라이까지 얹어서 줍니다. 그리 참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장치입니다. 

 

김치찌개 (세트에 포함, 17,000원)

왜냐면 김치찌개에 지방이 적은 부위인 목살을 넣고 끓여 국물맛이 깔끔담백한 편이기 때문입니다. 찌개에 돼지 지방을 잔뜩 넣고 끓이면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사라지는 대신 진한 지방맛이 생겨 김치찌개의 묵직한 풍미를 높여줍니다. 깔끔한 김치찌개도 좋지만, 먹다보면 분명 뭔가 칼로리가 땡기는 그럼 느낌이 오기도 하죠. 다시말해 지방맛이 모자란 것.

 

그때 고소한 지방맛을 품은 마가린밥을 먹는다면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을 겁니다. 아마 그런 의도에서 마가린밥이 굳이 공기밥 대신 등장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워낙에 밥이 꼬들하고 맛있게 지어졌기에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제가 살면서 먹어본 마가린밥 중 제일 맛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마가린밥을 먹을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요. 호호

 

오늘 점심을 함께한 동기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인데, 오늘은 먼저 맥주 한 잔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취준이 힘들긴 한가봅니다. 흑흑

 

먹어도 좋다는 타이머의 알람이 울리고 국물이 끓자 라면 사리를 투하합니다.

 

그리고 우선은 고기 한 점 시식. 사실 김치찌개 자체는 특별한 맛은 아닙니다. 그냥 맛있는 김치찌개입니다. 원래 김치찌개가 맛없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일단 밥이 맛있으니 김치찌개가 어떻든 확 전체적인 인상이 좋아집니다. 역시 밥 잘하는 집이 짱인 것입니다.

 

삼겹제육 (세트에 포함, 17,000원)

저희는 17,000원 짜리 세트를 시켰기에 삼겹제육이 딸려 나왔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김치찌개에 부족한 지방맛을 채워줍니다. 마가린밥으로도 살짝 모자라는 지방맛의 공백을 이 삼겹제육의 비계에서 흘러나오는 풍부한 동물성 지방이 가득 채워줍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불맛이 좀 끼얹어져 있어서 그냥 먹어도 맛있습니다. 예전에 먹었을때는 미친듯이 맛있다는 감상이었는데, 오늘 먹으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준수합니다.

 

라면 사리가 너무 푹익기 전에 건져서 고기와 함께 먹습니다. 고기는 꽤 푸짐한 편이라 아끼지 않고 먹어도 됩니다.

 

이번에는 삼겹제육과 함께 라면 사리를 먹습니다. 저는 이쪽이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사실 돼지 목살은 김치찌개에 들어가면 좀 뻣뻣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20분을 기다렸지만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겨우 만칠천원에 이 정도 구성이라면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에 맛까지 좋으니 웨이팅이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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