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블 에그' 전문가 3주 코스] 12일차, 치즈 스크램블 에그: 파마산 편

스크램블 에그에는 보통 어떤 재료를 첨가해도 안정적인 맛을 보장한다. 예컨대 수박이나 콜라 같이 '이거는 완전 안 어울리겠다' 싶은 재료가 아닌 이상 대개 괜찮은 것이다. 그말인즉 요리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있어서 어느정도의 안정성이 보장이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굳은 의지와 용기 없이는 쉽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없는데, 이는 아마 '굳라미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굳라미'란 굳이 라면에 미역을 넣을 필요가 있나?의 줄임말로서, 굳이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맛있는 라면에 미역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맛 없어질 수도 있는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있느냐는 함의를 갖고 있다. 사실 이것은 '굳라미'라는 단어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이지만, 그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스크램블 에그를 위해서 안정적인 현재를 버리고 불확실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이전부터 계속 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오늘 나는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기로 했다. 파마산 치즈를 계란에 첨가해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파마산 치즈가 계란과 안 어울릴 것이라는 걱정은 별로 없지만, 파마산 치즈가 사놓은지 좀 오래되어서 식중독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해보기로 한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오늘은 파마산 치즈를 첨가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 예정이다.

우측의 파마산 치즈는 생각보다 오래되어서, 사람 나이로 200살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위쪽에 있는 달걀이 더 크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어쩐지 아래 쪽에 있는 달걀이 더 커보인다. 같은 현상이라도 보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현상을 단편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누가 더 큰 달걀인지 고민해 보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큰 달걀이든 작은 달걀이든 깨져서 달걀물이 될 운명이다.



휙휙



파마산 치즈를 추가해준다. 추가하는 김에 추가적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파마산 치즈과 달걀물을 섞고 파스타면 위에 뿌리면 이탈리아식 -생각해보니 까르보나라는 원래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아무튼- 정통 까르보나라가 완성된다. 스크램블 에그와 까르보나라는 사실 친척 관계였던 것이다.



휙휙



약불로 놓고 마아가린을 녹일 준비를 한다.



마가린을 두 덩이 넣으면, 팬을 돌리면서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할 수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는 숫자 66를 그렸다. 관점에 따라서는 올챙이 두 마리, 아빠 새우튀김과 아들 새우 튀김, 묘기 중인 싱크로나이즈드 선수 등으로 볼 수도 있다.



이번엔 웃고 있는 조커를 그려보았다. 그렇게 안 보인다면 녹고 있는 마가린에 대한 다른 관점을 취해 볼 필요가 있다.



마아가린이 다 녹으면 더 이상 놀이를 할 수 없다. 계란물을 부어주자.



어제의 깨달음을 복기하며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계란을 살살 모아주는 식으로 조리한다. 더 멋진 스크램블 에그가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리 정신 없더라도 소금뿌리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완성된 스크램블 에그를 접시로 옮겨준다.



계란만 먹으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도 있기에 만두도 에어 프라이어에 구웠다. 

시간 조절 실패로 다소 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두에서 탄 맛이 안 났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타보이지만 미각적인 측면에서는 타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도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사진을 찍으면 덜 타보일까 싶어서 다시 찍어보았다. 별반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관점을 바꾸어도 안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보다.

파마산 치즈 스크램블 에그에서는 스크램블 에그에 파마산 치즈를 더한 맛이 났다. 스크램블 에그에 파마산 치즈를 넣었기 때문에 스크램블 에그에 파마산 치즈를 더한 맛이 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이상을 원했다. 파마산 치즈와 계란이 만나면서 그 두 재료 이상의 초월적인 맛이 발현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파마산 치즈 스크램블 에그는 단순히 두 재료를 그저 더한 맛이 났고, 그냥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 다음 파마산 치즈를 뿌려도 똑같은 맛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즉 1+1이 2 이상이기를 원했던 나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까르보나라에서 볼 수 있는 파마산과 계란의 시너지 효과는 스크램블 에그에서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참으로 아쉬운 결론이다. 물론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


12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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