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블 에그' 전문가 3주 코스] 14일차, 스크램블 에그와 삼겹살

만약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 중 딱 한 가지만을 소개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삼겹살을 선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삼겹살이 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돼지는 아마 무슬림을 제외하고는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사랑 받는 고기이고, 부위에 상관없이 대개 안정적인 맛을 보장하기 때문에 불호에 대한 리스크가 적다는 점에서 다른 한국 음식보다 우위를 지닌다고 나름 논변해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식의 한류 열풍의 선봉장으로 딱 적절하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보니 삼겹살이라는게 별로 특별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요리인지라 기존의 선봉장이던 비빔밥이 그 직책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가 어찌되었든 나는 오늘 집에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을 것이고 외국인이 내가 구운 삼겹살을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고로 언제나 그렇듯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리를 몇 줄에 걸쳐서 대강 써갈겨 놓은 셈이다.


그건 그거고 어제 베이컨을 먹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스크램블 에그는 서양 삼겹살인 베이컨이랑만 먹어야 하지? 물론 아무도 나에게 그러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분개심이 들었다. 엥 이거 완전 오리엔탈리즘 아니냐? 동양 삼겹살은 왜 스크램블 에그와 먹을 수 없지? 왜 삼겹살 집에서는 스크램블 에그 대신 계란찜을 서비스로 주는 거지? 계란찜을 서비스로 주는게 아니라 돈 받고 파는 삼겹살 집은 대체 무슨 심보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오늘은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삼겹살이 먹고 싶은데 적당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스크램블 에그도 삼겹살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뒷편에 보이는 계란이다. 마늘과 버섯을 배경으로 찍어보았다. 

삼겹살을 먹을 때는 채소도 함께 먹어야한다는 도그마가 한국인의 의식 기저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버섯과 마늘을 꺼내왔다.



삼겹살은 냉장고에 있는 걸 꺼내왔는데, 이게 몇 인분인지 전혀 감이 안온다. 내가 다 먹는다면 1인분이고 그게 아니라면 1인분 이상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삼겹살과 채소는 모두 부수기재다. 오늘은 스크램블 에그와 삼겹살의 궁합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계란을 깰때는 힘조절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간과하고 있다가는 크런치한 스크램블 에그를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계란 껍데기 잘 걸러내고 휙휙



마아가린도 투하해준다. 너무 많이 넣어 다 먹었다간 살이 너무 쪄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때는 다음과 같이 대처하는 것이 좋다.



싱크대로 흘려보내주면 된다. 이로써 나의 지방 건강 상태는 계속 양호할 것이다.



남은 마가린만 다 녹여주었다. 이거도 많아 보이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계란물을 올려준다. 확실히 계란이 작아진 것이 분명하다.



스크램블 에그 전문가 코스 2주차를 돌파했다면 이제는 스크램블 에그 준-장인 정도로 불려도 손색 없을 것이다.



모아주고 잔열로 조금만 더 익혀볼지 고민한다.



고민 결과 더 익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었던 것 같다.




삼겹살은 저절로 구워지지 않지만, 굽는 과정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삼겹살이 저절로 구워졌다고 믿어도 좋다. 현상 이면의 숨겨진 진실은 오직 추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스크램블 에그와 삼겹살의 투샷



뿌려줬다. 스크램블 에그가 나름 화장을 했다고 봐주면 귀여울 것 같다.



아주아주 멋진 한국인의 밥상 단체샷.

혼밥하는 주제에 사진이나 찍고 있으려니 약간 처량하다. 



사실 오늘 삼겹살을 구운 것은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함이었다. 

밥과 계란과 삼겹살과 김치를 한 숟가락에 올림으로써 대통합을 이루어내었다. 굉장히 아찔하고 완벽한 궁합이었다. 모두에게 널리 알고 싶은 맛이었다.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었기에 카메라까지 감격해 초점 마저 흐려져버린 것이다. 기존의 삼겹살 문법이었던 밥 김치 삼겹살 조합에 스크램블 에그가 투입되었을 때, 기존 조합에서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빈틈-만약 스크램블 에그가 침투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를-이 완벽하게 메꾸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밥과 삼겹살과 김치의 조합에서는 다소 결여되어 있었던 부드러움을 스크램블 에그가 완벽하게 커버하며 거대한 대서사시의 마지막 하모니를 완성한 것이다. 앞으로 이 4자 관계는 나의 머리 속에서 삼겹살을 떠올릴 때마다 꾸준히 회자 될 것이고 실제로도 자주 실현될 것이다.


14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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