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할머니순두부, 강릉 - '담백함'이라는 표현

강릉에 왔으니 순두부도 한 그릇 먹고 가야겠습니다. 예전부터 꼭 강릉 순두부를 먹어보리라 생각했는데 강릉에 갈 일이 없어 먹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변 친구들의 무수한 순두부 간증으로 강릉의 초당 순두부가 굉장하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니 이제 직접 먹어볼 때가 되었다 싶습니다. 그래서 12월의 마지막 주말에 초당 순두부를 먹고 온 이야기.

 

이 날 따라 정말 날이 좋았습니다. 도무지 12월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해도 쨍쨍하고 춥지도 않았습니다. 강릉 오기 정말 좋은 날씨였습니다.

 

바다보러 가기전에 우선 배를 채우러 순두부집을 방문했습니다. 이쪽 초당 순두부 마을에 오면 순두부집이 상당히 많은데요, 어딜 가나 대부분 웨이팅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웨이팅이 심한 두 곳으로 짬뽕순두부로 유명한 동화가든, 그리고 부드러운 순백색의 순두부를 내는 이곳 초당 할머니 순두부가 있습니다. 원래 매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에 저는 초당 할머니 순두부로 가 번호표를 뽑고 대기했습니다.

 

12시 반쯤 방문했는데, 제 앞으로 45팀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회전율이 빠른 편이고 날도 춥지 않아 기다릴 만 했습니다.

 

날씨가 좋아 너무 행복했음

기다리는 동안 하늘이 너무 예뻐서 사진도 몇 장 찍고, 햇빛도 정말 오랜만에 쬐면서 광합성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맞는 햇빛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작년 서울의 12월은 특히나 우중충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19년의 끝자락에서 해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강릉 짱

 

햇빛을 쬐고 나서도 대기열이 조금 남아 가게 주변을 배회했는데요, 현관 쪽에는 이렇게 유우명 인사와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순서가 돌아와 복작복작한 실내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찍을 순 없었습니다. 대신 줌으로 땡겨찍은 메뉴판을 감상하시길. 저희는 순두부 백반과 두부 반모를 주문했습니다. 

 

추가 반찬 통도 있는데, 저는 미처 이게 추가반찬인 줄 모르고 열심히 떠서 테이블로 가져가니 직원분이 이미 세팅해놓으셨었습니다. 머쓱했음.

 

순두부 백반과 두부 반모가 나왔습니다. 오늘 식사의 컨셉 컬러는 화이트 입니다.

 

순두부백반 (9,000원, 밥과 이런 저런 부수기재 포함)

서울에서 보던 빨간 순두부와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조금이 아니라 순두부가 들어갔다는 점만 빼면 아예 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빨간 순두부에서는 양념 맛에 묻혀있던 순두부 그 자체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순두부는 부드러운 식감으로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서 꽤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간은 강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아예 밍밍한 것은 아니구요, 그 비어있는 공백을 콩 특유의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이 채웁니다. 혀로 순두부를 으깰 수록 콩의 고소한 향과 살짝은 비릿한 향이 목 뒤를 거쳐 코로 전해집니다. 자극없이도 둥글둥글하게 입안을 가득채우는 순두부의 맛입니다. 이 묘한 밸런스 속에서 순두부는 한 숟갈 뜨고 밍밍해서 음? 싶다가도 다시 다음 숟가락을 들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콩향만을 즐기며 맛있게 먹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순두부의 감칠맛을 더욱 살려 먹으려면 어느정도의 짠맛이 필요하겠죠. 밑반찬들의 간이 적절히 짜게 설정되어 있어 기호에 맞춰 먹으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간장 양념과 된장도 순두부에 풀어먹을 수 있도록 제공되는데, 콩향을 해치지 않으면서 너무 밍밍할 수 있는 순두부의 간을 조절할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이 날 따라 이상하게 비지에 꽂혀서 다른 양념보다 비지에 특히 집중해 먹었습니다. 

 

김치랑 함께 먹는 것도 좋은 조합.

 

두부 반 모 (7,000원)

잘 만든 두부가 얼마나 맛있는지는 마트 두부만 먹어본 사람은 알기 힘들죠. 사실 저도 잘 만든 두부 한 두번 밖에 못 먹어봐서 잘 모름. 아무튼 이날의 두부도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순두부와 기본적인 맛의 구조는 마찬가지인 가운데, 입자가 거칠고 고소한 향이 더욱 강합니다. 이 은은한 단맛이 참 매력적입니다. 자극적인 간 없이도 맛있는 한 끼였습니다. 저는 담백하다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언어로 풀어 설명해내기가 참 어렵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이제부터는 이 두부의 맛으로 담백함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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