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마을, 서촌 - 멸치회, 청어알젓과 함께하는 낮술

오늘은 낮술을 하는 날입니다. 경복궁역 앞에 유명한 술집이 있다길래 오픈 시간인 3시에 가서 대낮부터 소주를 한잔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왠걸, 3시 5분에 도착하니 이미 저희 앞으로 5팀이 대기중입니다. 어마어마한 인기의 술집, 서촌의 '안주마을'입니다.

 

다 먹고 집에 갈 때 쯤 찍었던거라 날이 어두움

오픈 시간보다 단지 5분 늦게 갔을 뿐인데 이미 좌석은 다 차고 5팀이나 웨이팅이 있습니다. 그나마 최첨단 예약 시스템 테이블링이 있어 문 앞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다행. 옆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빈속을 달래고 있으니 1시간 반만에 입장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안주마을을 해산물 위주의 안주를 판매하는 곳입니다. 저는 이 날 주체성없이 동행자의 손에 이끌려 갔기 때문에, 메뉴를 고를 때까지는 이 집의 매력포인트가 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 먹고 집에 갈때쯤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해산물 안주 라인업과 꽤나 저렴한 가격, 그리고 상당한 안주 퀄리티 등이 있었습니다. 잘되는 집은 이유가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

 

참고로 콩나물국은 냉국. 차가움

기본 안주로는 콩나물국과 고추양파절임이 나옵니다. 일단 콩나물 국이 나왔기 때문에 오늘의 주종은 소주로 결정합니다. 콩나물국과 소주의 상관관계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냥 이 날은 소주가 먹고 싶은 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측 멸치회와 우측 청어알젓이 나온 모습입니다. 

 

통영 멸치회 (20,000원)

사실 멸치회는 처음 먹어보는 것입니다. 여태 제가 봐온 멸치들은 하나같이 말라찌부러져 있거나 아니면 국물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드디어 생전 모습에 그나마 가까운 멸치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아쿠아리움에 가도 멸치를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멸치 생살을 보는 것은 진귀한 경험입니다.

 

멸치는 잡히면 금방 죽기 때문에 바닷가를 가야만 멸치 생물을 맛볼 수 있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멸치 회를 만날 수 있게 된 모양입니다. 취업도 잘되고 싱싱한 회도 먹을 수 있고 역시 과학이 최고인 것입니다.

 

초장, 간장, 막장쌈장이었던 것 같기도—도 줄줄이 나와서 골라 찍어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멸치회에는 참기름과 깨가 뿌려져 나와 우선 고소한 향이 코를 사로잡습니다. 멸치 자체에서도 고소한 맛이 있기에 괜찮은 시너지를 냅니다. 거기에 멸치 자체의 기름짐과 살점의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아주 쉽게 바스라지는데 상당히 별미입니다. 소주를 그냥 부르는 맛입니다. 비리지 않아 자꾸 손이 가게 됩니다.

 

김에 싸서 먹기에도 좋습니다. 김의 감칠맛과 특유의 향이 멸치회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김과 멸치 살의 감칠맛이 만나 맛의 폭발적 상승을 유도하고, 알싸한 와사비가 맛을 완결시키며 그 방점을 찍습니다. 이 날 와사비 상태가 꽤나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깻잎에 미나리와 양파를 넣고 멸치회 두세점 올린 후 막장인지 쌈장인지 헷갈리는 것을 또 올려먹으면 그 맛 역시 기가 막힙니다. 멸치회의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깻잎과 미나리의 향과 만날 때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청어알젓과 두부 (13,000원)

두번째 안주로는 청어알젓과 두부가 나왔습니다. 메뉴 이름에는 청어알젓과 두부만 있지만 실제로는 오이도 같이 나옵니다. 오이 이름만 봐도 치를 터는 오이 헤이터들을 배려한 작명센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반대편에서도 찍어보았습니다. 이번 컷은 고의는 아니었지만 두부에 집중해보았습니다.

 

청어알을 더 자세히 찍어보려했는데 파 때문에 잘 안 보임.

 

아마 이렇게 삼합으로 먹으면 될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예술 감각을 발휘해 저만의 플레이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어디 파인다이닝에 나올 것만 같은 아름다운 자태. 스스로 감탄했습니다. 

 

근데 먹어보니 두부 양이 너무 많아 오이와 청어알젓 맛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이를 더 추가해본 플레이팅입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오이양을 늘리는 것 보다는 그냥 두부를 반 잘라서 먹는 것이 오히려 밸런스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맛은 두부를 으깨서 대충 먹을때가 제일 좋습니다. 매콤한 청어알젓의 맛이 오이의 시원한 맛과 잘 어울립니다. 두부는 고소하고 단 맛으로 그 둘이 더 빛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해줍니다. 안주로 조금씩 조금씩 먹기에 좋았습니다.

 

낮 3시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극악의 웨이팅만 아니라면 종종 방문하고 싶은 술집입니다. 탁월한 가성비와 넓은 메뉴 선택 폭까지, 술 한잔 하기에 이처럼 좋은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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