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레노, 북촌 - 스페니쉬 레스토랑에서의 런치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은 간만에 돌아온 특별한 날. 예전부터 벼르고 있던 '떼레노'에 런치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아 물론 이렇게 한 번 먹고나면 한 달은 삼각김밥만 먹어야겠지만 어쨌든 그래도 먹는 동안은 행복하니까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스페니쉬 요리의 미슐랭 1스타 식당 '떼레노'입니다.

 

안국역에서 북으로 쭉 올라가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 건물 2층이라고 하네요. 저는 그렇게 말해도 어딘지 몰라서 그냥 지도보고 갔습니다.

 

2층에 올라가면 떼레노 입구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데 올 일이 잘 없으니까 민망해도 꾸역꾸역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대충찍긴한것 같습니다.

 

식당 내부는 깔끔합니다. 막 엄청 화려하다거나 접객이 유려하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느낌. 

다른 것보다 테이블 간격이 넓은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오늘은 6만원짜리 런치 메뉴를 먹을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만 9천원이었던 것 같은데 2020년되고 나서 오른 모양.

적혀 있는 걸론 5가지 요리가 나오는 다고 합니다. 메인은 생선, 돼지, 소 중에 고를 수 있고 소는 추가 요금이 있습니다. 저희는 주저없이 바로 생선과 돼지를 골랐습니다.

 

일단 이렇게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올리브 오일을 접시에 따라주고 식전빵을 갖다 주십니다. 올리브 오일은 풀향이 은근하게 올라와 빵 찍어 먹기에 좋습니다. 빵도 맛있는 편. 하지만 오일이 더 맛있는 편입니다.

 

ROYALE DE FOIE / 엑스트라 다크 카카오, 푸아그라 파테 페드로 히메네즈 리와인 리덕션, 사과, 피칸, 다크 초콜릿 70%

푸아그라로 만든 에피타이저입니다. 사과 모양으로 상당히 귀엽고 이쁩니다. 부수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실제로도 부수기 쉽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겉에는 카카오 가루가 뿌려져 있고 속에는 푸아그라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느낌으로 차갑게 나옵니다. 티라미슈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일종의 혼종 요리인 것 같습니다. 좋은 말로는 창작 요리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첫 요리에 대한 인상은 살짝 갸웃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면, 과자 쌀로별의 초코 아이스크림 버전 같았기 때문입니다. 빵에 발라 먹기를 추천하셔서 발라 먹어봤는데 뭐 그냥 쏘쏘했음. 아직 내공이 모자라서 맛을 제대로 못 느낀 것은 아닌가 싶어서 최소한 겉으로는 맛있게 먹는 척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부터는 먹을만하게 느껴졌습니다.

 

VIEIRA / 관자, 샬롯과 팔로미노 와인 소스, 컬리 플라워, 산호 칩

두번째로 나왔던 것은 관자요리입니다. 관자가 콜리 플라워와 산호칩과 함께 나옵니다.

 

하얀게 산호칩이고 다른 알록달록한 것들은 콜리 플라워입니다. 색깔이 다양해서 신기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맛은 다 똑같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 하얀 칩 위에 콜리플라워랑 관자를 올려 먹으니 꽤 괜찮습니다. 다른 것 보다 바삭한 칩이 식감을 살려주면서 이 요리의 킥이 되었습니다. 

 

관자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맛의 소스도 좋았습니다. 

 

얘는 신기해서 찍어본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조금 징그럽기도 한 것 같습니다.

 

TINTA / 고시히카리, 제주산 딱새우, 홍합, 락토네사 소스, 오징어 먹물

세 번째로 나온 것은 빠에야 같은 쌀요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날의 베스트였습니다.

 

먹물로 쌀을 시꺼멓게 조리해놓았습니다. 감칠맛이 두드러지는 접시였습니다. 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까만 김 같은 칩이 이 요리에서 가장 인상깊었는데요, 바삭바삭해가지구 부셔서 밥에 비벼놓으면 짭조름하고 좋았습니다. 밥에 김자반 비벼먹는 느낌이랄까요.

 

참고로 홍합은 껍데기에서 이미 분리되어져 있습니다. 굳이 껍데기가 들어있던 이유는 그냥 멋내기 용이었던 것입니다. 

안에는 락토네사 소스가 들어있습니다. 락토네사가 뭔가 싶어서 한참을 찾아봤더니 계란 없이 만드는 마요네즈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유 마요네즈 같은 느낌입니다. 영어로도 자료가 별로 없는 스페인 쪽 로컬 소스인 모양입니다. 아무튼 크리미한 소스였다는 것입니다.

 

슥슥 스까서 대강 먹었습니다. 홍합도 그렇고 새우도 그렇고 부드럽고 눅진한 감칠맛이 강한 소스와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동행자의 경우에는 상당히 짠 편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에는 하나도 안 짰습니다. 개인마다 느끼는 편차가 있는 모양입니다. 아 그리고 이거 먹을때 조심 안하면 입술 다 시꺼매지니까 알아서 요령껏 잘 먹어야 겠습니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입을 씻어내라고 주는 샤베트입니다. 메뉴판에 적혀있지 않은 메뉴가 나오니 선물이라도 받은 것 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

 

배와 생강으로 만들었다는 샤베트고, 밑에는 오트밀이 깔려있다고 합니다. 생강향이 꽤 강하지만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입을 상쾌하게 만들어줍니다. 밑에 오트밀이랑 같이 먹으니까 식감도 생기고 좋앗음.

 

샤베트 먹고 있는데 서비스로 받은 샹그리아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서비스를 받아서 갑자기 엔돌핀이 확 상승했습니다. 감동의 눈물로 '떼레노'의 충성 고객이 되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물론 충성은 하겠지만 지갑사정이 도와주지 않으면 재방문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IBÉRICO / 이베리코 라가르토, 포르치니, 모렐 머쉬룸, 예루살렘 아티초크, 판체타, 페리고르도 소스와 퇴셀 주스

점점 메뉴 속 재료들의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뭐가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봤자 어쨌든 돼지고기에 버섯 그리고 소스인 셈입니다. 

 

넓은 접시에 듬성듬성 플레이팅이 되어 있어 마치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베리코라고 엄청 특별하지는 않았습니다. 전 날 남영돈의 항정살을 먹어서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식감도 좋고 육즙도 상당합니다. 감자 퓨레나 적당히 눅진한 소스와도 상당히 잘 어울리구요. 다른 것보다 포르치니 버섯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돼지 고기와 함께 먹을때 탱탱한 식감이 꽤 잘 어우러졌습니다. 모렐 버섯으로 추정되는 것도 쪼꼬만 친구들이 몇개 있었습니다. 

 

BACALAO / 대서양산 염장 대구, 검은 송로버섯, 버터에 구운 카다이프

이것은 동행자의 메인코스였던 대구 요리입니다. 간지나게 올라간 트러플이 인상적입니다. 가장 밑에는 퓨레가 깔려 있고 그 위에 카다이프라고 하는 얇은 면 튀김으로 둘러 놓은 대구가 올라가 있습니다. 먹을 때는 다 뽀개서 먹으면 됩니다.

 

제 코스가 아니라 그냥 한 두 포크 얻어 먹어만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면 튀겨놓은 것을 정말 좋아해서 카다이프가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집에서 맨날 라면만 튀겨 먹었는데 언제 한 번 소면도 튀겨먹어봐야겠습니다. 

 

ARBEQUINA / 알베끼나 올리브 오일 아이스 크림, 알베끼나 올리브, 초콜렛 무스, 마스카포네 크림, 발사믹 리덕션, 엑스트라 버진 오일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입니다. 올리브 오일로 만들었다는데 진짜 올리브오일의 그 풀향이 났습니다.

 

이 집 요리들은 하나 같이 보기 좋아서 뿌셔 먹을 때 아쉽습니다. 이것도 무슨 A형 텐트라도 쳐놓은 것 같아서 부수기 좀 미안했습니다. 근데 저 갈색 과자가 아이스크림과 먹을때 진짜 맛있었음. 텐트두번뿌셔

 

코스가 끝나고 나면 차를 한 잔씩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커피를 골랐는데, 여기 커피 맛집. 

 

그리고 차와 함께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또 주셨습니다. 오늘 아이스크림만 4 접시 째 먹는 중. 

 

초코송이에서 영감을 받은게 분명한 디자인.

 

알고보니 버섯대가리도 아이스크림이었던 것입니다. 밑에는 젤라또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흩뿌려져 있는 것은 카카오 닙스와 오트밀들인데 달달한 아이스크림이랑 같이 먹으니까 씹히는 맛이 기가 막힙니다. 

 

북촌에서 맛본 훌륭한 스페인 식사였습니다. 특별한 날 가끔 이렇게 먹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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