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렛 포테이토 버거, 맘스터치 - 감자를 좋아한 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을까. 글쎄, 사람 마음이라는 건 자기 마음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

고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니, 죄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를 좋아함에 따라 부수적으로 찾아오는 불이익에 대해서는 그 마음의 주인이 책임져야 한다. 마음이 선택했으니 마음의 주인이 고통을 떠안는 것이 맞다.

나의 경우에는 감자를 사랑한 죄로 맛있는 싸이버거 대신 맛없는 휠렛 포테이토 버거를 먹어야했다.

 

나는 원래 패스트푸드점에서 신제품을 잘 시도하지 않는다. 버거킹의 콰트로치즈와퍼 이후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데, 그게 벌써 10년은 된 이야기다.

그럼에도 오늘은 홀린 듯이 신제품을 주문했다. 이유는 오로지 감자였다. 나는 감자도 좋아하고 햄버거도 좋아하지만 감자 넣은 햄버거를 먹어본 기억은 없었다.

가끔 후렌치 후라이를 빅맥에 끼워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소박한 실험이었을 뿐 냉정한 햄버거의 세계에서는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할 조악한 개조품에 불과했다. 

 

파파이스와 칙필레가 미국에서 본격적인 치킨버거 경쟁을 펼치기 십년전부터 싸이버거로 한국의 치킨 버거 시장을 주도해왔던 맘스터치라면 감자 버거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문했다. 계산을 위해 카운터에 섰을 때, 포스기 모니터의 광고에서는 누가 나비넥타이를 매고 햄버거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섬칫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내 입에서 나온 주문은 종업원의 귀로 넘어가버렸다. 그 주문은 이제 내 것이 아니어서 맘대로 무를 수가 없었다. 낙장불입이었다.

 

종이 포장을 열었을때 나는 옆구리에서 케첩을 철철 흘리고 있는 버거를 보았다. 아뿔싸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케찹을 흘려도 너무 흘려서 의무병이 온다한들 손 쓸 방도가 없었을 것이었다. 

 

포장을 돌돌 말아 최대한 먹기 좋게 감싸쥐었다. 먹기 전부터 알 수 있는 이 버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먹기 힘들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의 입크기를 염두에 두고 버거의 높이를 설정한 것일까.

 

먹어보니 베어물어지기는 했다. 턱 빠지는 소리가 뚝뚝 나기는 했지만 아무튼 먹을 수는 있었다. 

먹어보니 또 다른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령없이 바른 케찹은 버거의 중심부까지 침투하지 못했다. 가장자리만 맴돌던 핏빛 케첩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옆구리도 모두 흩어져 나갔다. 

케첩이 뭉쳐있는 부분을 베어 물었을 때는 버거에서 케첩맛만 났고, 뭉쳐있지 않은 부분을 먹었을 때는 감자와 퍽퍽한 가슴살 맛만 났다. 버거 아랫동에는 화이트 소스가 발라져 있었지만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소스의 맥없는 배치는 버거 자체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감자와 닭 모두 본연의 향이나 맛이 강한 재료가 아니다. 요리의 인상을 결정하기보다는 부피감을 담당하는 재료들이다. 그들의 역할은 개성을 가진 재료들이 제 매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화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버거에서 맛을 담당해야 할 소스가 빵과 패티 사이에 제대로 침투하지 못하고 겉도는 사이에 닭가슴살과 감자가 되려 버거 맛의 전면에 선다. 필연적으로 지루했고 포만감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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