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식사일기, 1일차 - 코로나는 왜 우리 집 문을 두드리나

엄마가 어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나도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오늘 아침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이제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간다. 

 

양성인지 음성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내일 오전 결과가 나온다. 지금까지 특별한 증상은 없다. 무증상 감염 케이스가 많다하니 가능성은 반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코로나에 걸렸든 아니든,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 내일 양성 판정을 받는대도 병원 시설에서 세 끼 식사를 할 것이고, 음성으로 자가격리를 하더라도 세 끼 식사를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껏의 식생활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름 음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으로, 이런 독특한 경험을 그냥 넘길 수 없다. 소재가 생긴다면 써먹어야 인지상정. 앞으로 2주간의 식사일기를 이곳에 남기고자 한다. 


아침 8시부터 부산을 떨었다. 일찌감치 검사를 받고 오겠다는 심산이었다. 보건소 앞에는 오픈시간인 9시 이전부터 이미 줄이 있었다. 빨리 도착한 덕인지 9시 30분 쯤에는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 뿐, 실제 검사는 순식간에 끝난다. 아크릴판 너머에서 직원이 특수 장갑을 끼고 면봉으로 입을 한 번, 콧구멍을 한 번 쑤신다. 면봉이 생각보다 깊게 들어온다. 특히 코 검사 할때가 그렇다. 뇌를 터치하고 가는 것만치 면봉은 콧구멍 깊숙히 들어온다. 검사가 생각보다 아프다던 후기가 이해가 간다. 

 

검사가 끝나면 직원 분이 위생 키트를 하나 씩 나눠준다. 거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문양이 그려진 쓰레기 봉투가 들어있다. 격리 생활 중 생기는 쓰레기는 모두 이 주황색 봉투에 넣어 격리가 끝나는 날 한꺼번에 버려야 한다. 일회용 식기, 레토르트 식품 포장을 비롯해 온갖 쓰레기들이 들어갈 예정이다. 명색이 식사일기인데 쓰레기봉투부터 보여줘서 미안하다. 어쨌거나 식사와 관련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사실 오늘 별로 먹은게 없어서 올릴 사진이 없드라구)

 

검사를 받고 집에 왔다. 큰 일을 마치고 온 기분이다. 침대에 누워서 코로나 관련 정보를 검색한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하등 쓸모 없는 이야기란 걸 알지만 '무증상 전파' 같은 키워드를 자꾸만 찾아본다. 

문득 어제부터 먹은 것이 별로 없단 걸 떠올린다. 어제 저녁은 피자 한 쪽으로 때웠다. 점심에 먹다 남은 피자였다. 피자를 먹으려고 데웠다가 입맛이 없어 다시 식을 때까지 내버려뒀다. 그제서야 억지로 먹었다. 피자를 시킬 때만해도 엄마의 확진 사실을 몰랐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이 확진자 중 하나가 될 줄 누가 감히 알았겠으랴. 몇 달째 매일 쌓여가던 확진자 번호는 그저 숫자였기에 실감나지 않았다. 다른 세계 이야기라 생각했다. 엄마가 그 숫자 중 하나가 되고나서야 현실임을 알았다. 

어쨌든 먹은 것이 없으니 배가 고팠다. 요리할 힘이 없기도 하고, 애당초에 방 밖으로 나가는 것 조차 꺼림칙했다. 우리는 중국 음식을 주문했다. 배달기사는 문 앞에 볶음밥과 우동을 놓고 말 없이 사라졌다. 문을 반만 열어 죄인처럼 음식을 챙기고 다시 문을 닫았는데 별안간 노크 소리가 난다. 우리는 흠칫 놀랐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우리 집 현관을 두드리나. 알고보니 배달기사였다. 볶음밥에 딸려 나오는 짬뽕 국물을 안 놓고 갔단다. 

 

각자 접시를 들고 각자 방으로 사라진다. 나는 볶음밥을 시켰다. 입맛이 없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 중국 음식을 먹게 되면 볶음밥을 고른다. 그런 경우라면 맛보다는 연료 충전 의미로 먹는 것이 크기 때문이다. 볶음밥은 대강 비벼 숟가락으로 크게 몇 번 떠먹으면 금방 다 먹을 수 있다. 연료 충전 용도라면 다른 무엇보다 간편한 것이 좋다. 그래서 오늘은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릇의 랩을 방안에서 홀로 벗기고 있자니 참으로 처량하다. "갑자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혼잣말을 하다가 기침처럼 헛웃음을 별안간 몇 번한다. 그래도 수저질을 멈추진 않는다. 어쨌든 먹어야 사니까. 겨우 몇 시간 전에 먹은건데 벌써 무슨 맛이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난다.

 

밥을 먹고나서는 쿠팡에 가입했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마트를 갈 수 없으니 매일 식료품을 배송 받으려 한다. 쿠팡이 그리 편하다고, 한번 써보라고 몇 번 권유를 받았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뜻밖의 기회에 사용하게 됐다. 마침 라면이 떨어져 라면을 한 박스 주문했다. 

 

어제 아침에 사서 먹다남은 커피 한 통. 아메리카노는 의외로 기름진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 볶음밥을 먹고 나서 입가심 겸 마셨다. 

 

이제는 가족끼리 물컵도 공유할 수 없다. 각자 물컵을 정해 방으로 들고왔다.

물은 시시때때로 마실 작정이다. 목이 아프면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목이 아픈 건 아니지만 미리미리 마셔둬서 나쁠 건 없겠지. 

 

뒷편엔 에프킬라

자가 격리가 시작되니 딱히 할 일이 없다. 물론 원래도 일요일엔 할 일이 없지만, 일단 '자가격리'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니 더더욱 비는 시간이 넓어보인다. 낮잠도 자고, 미뤄둔 넷플릭스 드라마도 마저 봤다. 그래도 아직 한창인 오후 시간이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은 느리게 갈 작정인가보다. 

여섯시쯤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배가 고팠다기보단 이를 닦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양치없이 그대로 낮잠에 들었더니 오후 내내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늦게라도 이를 닦으려고 보니 마침 곧 저녁 시간이었고, 그렇다면 그냥 저녁을 먹고 평소보다 일찍 이를 닦기로 맘 먹은 것이다. 

딱히 먹고픈 것이 없어, 밥을 반 공기만 퍼고 참치와 김치와 함께 담아 방으로 들어왔다. 그야말로 간편한 저녁식사다. 나는 평소에 김치를 찾아 먹지는 않는 편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김치를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가져왔다. 수퍼푸드 K-김치의 면역향상 효과를 믿어보는 것이다. 

 

반찬통에 담긴 김치를 그냥 먹으려다 혹시 내가 양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밥그릇에 조금 덜었다. 남은 김치는 다시 냉장고에 갖다 넣었다. 차가운 냉장고 반찬 칸에 덜렁 놓인 김치가 처량해보인다.

김치에 참치 뿐이었는데 저녁 식사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사실 식욕부진이 코로나 초기 증상이란 말을 들은바 있어, 어제 오늘 입맛 없는 것이 꽤나 신경 쓰였었다. 그런데 뜨끈한 쌀밥에 김치 하나 올려 먹으니 그런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먹고 나니 기분이 꽤 나아졌다. 먹을수록 입맛이 살아나 되려 배가 고파오는 것이었다. 참치도 남김 없이 먹고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 했다.

 

디저트도 먹는다. 그냥 먹기는 그래서 나름 깔끔하게 사진도 하나 찍었다. 달달하다못해 살짝 쌉싸름한 것이 식후에 먹기에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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