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식사일기, 2일차 -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일단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오전 일찍 결과가 나왔다. 문자 한 통에 이렇게 맘 졸여본적이 또 있었던가. 가족이 다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다. 

 

몇 주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귤인데 아직도 다 못 먹은 것.

음성 소식을 듣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귤을 하나 까먹었다. 귤은 달았다. 

 

두번째 귤을 까먹으려 할때쯤 엄마를 생활치료센터까지 이송할 차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제야 상황이 다시금 실감났다. 코로나 사태는 변함없이 진행 중이다. 

 

아침 일찍부터 바짝 긴장을 했더니 배가 몹시 고프다. 10시 30분에 맥모닝 타임이 끝나자마자 맥도날드를 주문했다. 아빠 핸드폰에 배달의민족 어플을 새로 깔아드렸다. 할인쿠폰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 배민 아이디 없는 사람이 아직 존재한단 걸 오늘 알았다.

 

남은 가족 세 명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밥은 따로 먹는다. 아직 잠복기일 수 있기에 앞으로 2주간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엄마와 같은 병실을 쓰는 학생도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9일차에 증상이 나타나 재검 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집에 남은 가족 중 누구에게 언제 증상이 발현할지 모른다. 여전히 우리는 살얼음판 위에 있다.

 

맥딜리버리가 으레 그렇듯 버거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버거도 눅눅하고 감자튀김은 더더욱 눅눅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아쉬운대로 먹어야지 어쩌겠나요

 

어제 주문한 쿠팡 배달이 왔다. 격리하면서 딱히 라면이 먹고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와 관계없이 많이 먹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함께 주문한 종이컵과 요리장갑도 이상없이 왔다. 일정 금액을 채우니 배송비도 무료다. 자가격리가 아니더라도 한번 쿠팡배송에 맛들이면 굳이 마트갈일 없긴 하겠다.

 

조금 후엔 구호물품이 도착했다. 한 가구 당 10만원 혹은 구호물품을 선택할 수 있다. 차라리 10만원을 선택할걸 그랬다. 뭘 기대했던건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박스엔 내 돈주고는 절대 안 사먹을만한 것들만 가득 들어있었다. 차라리 전투식량이나 들어있었음 좋았을텐데.

 

아무튼 그래서 저녁은 구호물품 상자에 있던 카레를 먹기로 했다. 실로 오랜만에 먹는 3분카레다. 

 

밥통엔 토요일날 지었던 밥이 아직 남아있다. 토요일은 이 모든 사단이 시작된 날이었다. 그날 밥이라면 어서 먹어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뜨끈하게 데운 카레를 밥 위에 부었다. 역시나 방으로 가져가서 먹어야 한다. 방 안에만 계속 있으려니 영 맘이 답답하고 멍하다.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도 증상 발현이 시작된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들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잘 먹고 잘 자면서 버티는 수 밖에 없다. 

 

흔하디 흔한 오뚜기 3분카레여도 조금이나마 특별하게 먹고 싶어 위에다 파슬리를 조금 뿌렸다. 너무 오랜만에 먹은지라 원래 3분카레 맛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파슬리 덕분인지 꽤 맛있는 식사였다.

카레를 먹으면서는 넷플릭스에서 타코 다큐멘터리를 봤다. 타코는 내가 LA 살 적에 자주 먹던 음식이다. 보고 있자니 절로 그곳 사람들 생각이 났다. 미국은 하루에 확진자가 10만명씩 새로 나온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 전체가 난리다. 정말 이 상황은 언제쯤 끝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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